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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l 22. 2024

2024. 07. 03.

아빠


오늘도 점심을 먹자마자 책상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 전임들을 향해 나는 울부짖었다. 


“우리가 이렇게 개처럼 소처럼 일만 해선 안되잖아요! 건강을 위해 식후 20분 산책을 생활화합시다! 부지부장님이 하는 말 들었죠? 전임들 건강이 지부의 건강이라 하셨어요!" 


샘들은 '왜 저렇게 꽥꽥거리지?'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주섬주섬 채비를 하셨다. 우리는 산책 겸 사무실 근처의 다이소로 걸어가 소비욕을 불태웠다. 나는 여행용 칫솔, 스누피와 우드스톡 파일 홀더, 손거울 등 닥치는 대로 집어 들었는데 영수증에 7천원 밖에 찍히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돌아다니는 맛이라도 있어야 전임생활하죠. 이게 전임의 유일한 낙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 


샘들은 역시 다소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으셨지만, 나로선 포근하고 즐거운 산책이었다. 


이제 나의 일상을 되찾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퇴근 후 영혼의 양식 순대국밥을 먹고, 공공 체육시설 운동장을 훠이훠이 걸었다. 그 운동장의 콘셉트인지 뭔지; 아저씨들이 몽땅 맨발로 운동장을 걷고 있었다. 문득 나를 종종 민망하게 했던 아빠의 아저씨 같은 행동들이 떠올랐고, 절대 아빠 취향이 아닌 꽃에 휩싸여 있던 염습 광경이 떠올라 잠깐 훌쩍거리다가, 다시 훠이훠이 걸으며 땀을 흘리고 30분동안 수영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일상이 재구축되고 있다. 여전히 감정의 블랙홀이 자주 열리지만 오늘이 어제보다 나으므로 걱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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