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학년 학생들을 맡고 있다. 어디에 내놔도 민망한(?) 좌충우돌 교실이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와중에도 민주적인 학급 운영을 위해 나름 노력한다. 하지만 나와 학생들의 관계가 언제나 수평적이지만은 않다. 매 순간 모든 장면에서 인권친화적이지만도 않다. 나는 가끔 일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만. 그냥 ‘네’라고 대답하세요.”
학기 초 교실과 복도에서 전력 질주를 하거나 괴성을 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주의를 줬더니 돌아온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도 했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어제 복도에서 소리 지른 이는요?”
심지어 5초 후면 들통날 거짓말을 하며 안 뛰었다고 우기기도 했다. 과제 확인을 해도 우스운 사태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공책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엄마가 학습지를 버렸거나, 지우개가 없어서 못 했다는 식이었다.
오래간만에 담임으로 복귀했던 나는 신인류의 언행에 충격을 받았다. 논리적인 설득부터 시도했다. “다른 친구가 같은 잘못을 했어도 너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란다.”, “회피하지 말고 인정하고 개선하는 태도가 필요해.” 하지만 무책임한 변명과 현실 부정, 옆 사람을 탓하며 흥정하려는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학생들의 말을 잘랐다.
“그만. 그냥 ‘네’라고 대답하세요.”
나는 아이가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무한정 기다려주는 교사가 아니다. 설득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설득과 끝없는 소통만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마음은 행동을 이끈다. 역으로 행동이 마음을 변화시키고 습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스스로 기본 생활 습관을 형성하지 못하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 나는 다소 강제적으로라도 습관의 틀을 만든다. 인사하기, 예의 갖춰 말하기, 폭력 쓰지 않기, 자리 정돈하기, 수업 준비하기 등의 일상적 규율 영역에서다.
살아가며 깨달았는데 나는 유물론자에 가깝다. 정신과 관념보다 물질적 조건이 사회와 역사의 변화를 이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한국형 사회정서교육’, ‘학생 마음건강 교육’, ‘힐링 프로그램’과 같은 정책적 기조가 답답하다. 취지가 나빠서가 아니다. 비현실적이어서 문제다. 높은 자살률과 구성원들의 마음 건강 상태는 사회적 구조와 상호작용의 결과다. 개인의 마음만 아끼며 보듬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의 마음이 산만하게 흩어지면 나는 빗자루를 들고 교실 청소와 정리 정돈부터 시작한다.
교육은 관계다. 모든 관계는 현실적 조건 위에 선다. 사랑 또한 그렇다.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규율, 훈련, 집중, 인내, 믿음, 그리고 나르시시즘의 극복을 요구한다고 했다. 사랑은 지식과 노력과 훈련이 요구되는 실천적 행위다.
교육도 사랑과 마찬가지다. 감정과 일방적 헌신만으로 구현할 수 없다. 수많은 교육정책이 현장의 반발을 사고 노동력과 예산 낭비라는 오명을 썼다. 악한 의도는 없었다. 정치인들의 표 계산조차 그 자체로 악랄한 행위는 아니다. 모두 돌봄, 자율, 인권, 평등, 선택권 강화 등의 가치를 표방했다. 다시 말하지만, 원인은 누군가 나빠서가 아니다.
문제는 가치를 구현할 제도적 인프라, 인력과 재정의 뒷받침, 현실적 판단과 진단의 부재다. 교육을 믿음의 영역에 두고 좋은 말 퍼붓기, 밀어넣기식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상호작용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총체성을 무시하고 구호만 외쳤기 때문이다. 교육은 종교적 믿음이나 도덕이 아니다. 현실이다. 이 점에서 교육운동 세력 역시 같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좌충우돌 우리 반 교실로 돌아가 보자. 학년 초 학생 중 일부는 어른과 신뢰 관계란 걸 맺어본 적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 농부와 건축가처럼 팔을 걷어붙였다. 씨앗을 심고 골조를 세웠다. 인사하기, 자리 정돈하기, 수업 준비하기, 회피하거나 불필요한 변명하지 않고 '네'라고 대답하기. 교육이 가능한, 관계의 현실적 조건을 갖추는데 한 학기가 걸렸다. 반발과 민원으로 포기하고 소진된 다른 교사들의 사례를 봤다. 학교와 사회는 여전히 정당한 의견 제시와 교권 침해의 경계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뒷받침은 미비했다. 나는 개인기와 운 덕분에 무사했을 뿐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진' 교사다. 하지만 우리 교실에서 교육적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한 요소는 이상과 관념뿐만이 아니었다. 가치와 합의에 기반해 살아 작동하는 '규율'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리듬이었다. 학생이 입술과 혀, 저작근을 비자발적으로 움직여 낸 ‘네’라는 한마디로 시작된 타인의 존재 인정과 책임이었다.
어떤 가치도 현실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풀어야 할 과제는 발 딛고 선 현실의 바닥이다. 지금 내 앞에 선 학생의 성장이다. 교육하는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