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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l 16. 2019

교장의 자격 : 자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2018년 2월)

그 교장의 딸은 교사, 손주는 초등학생이었다. 손주의 학교 숙제인 수행평가 보고서와 미술 작품은 젊은 교사가 쓰고 그렸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교장이 이렇게 말했다.  


“호호, 고 녀석. 글쎄 선생님한테 그걸 꼭 자기 혼자했다고 한다잖아? 너무 잘했으니까 엄마랑 같이 했다고 하랬더니 싫대. 호호..” 


옆에 앉아있던 교사는 놀랍다는 듯 대답했다. 


“아주 똘똘하고 야무지네요!” 


그 교장은 학교 공사 업체와의 뒷거래, 평교사에게 푼돈 뜯기로도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날 가장 오싹하게 했던 최악의 추태는 급식실에서 들었던 그 다정한 속닥거림이다. 이제 그 손주는 중학생쯤 됐을 거다. 부디 잘 자라고 있길 빈다. 


극단적인 사례라는 걸 알지만 나는 이런 직·간접 사례를 수십 개쯤 더 열거할 수 있다. 전국의 모든 교장들이 이토록 형편없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기괴한 교사 승진 제도에 있다. 현재 승진 시스템으로는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리더십을 도저히 검증할 수 없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교사가 제도를 이용해 교장이 되고, 교육의 이름으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학생·학부모·교사 다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더라도 속수무책이다. 


현재 교사 승진 시스템인 교장 자격증제는 교육자 본연의 일과 능력의 의미를 왜곡한다. 나는 이것이 멀쩡한 교사마저 이상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교육계 최대 적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자격’ 교장 논란 


2017년 12월 26일 교육부는 교장공모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 교장공모제 :  학교가 교장 후보자를 공개 모집하고 학교 구성원들이 심사해 선발·임용하는 제도. 교장자격증 소지자만 지원할 수 있는 초빙형, 미소지자도 일부 지원 가능한 내부형, 미소지자도 자유롭게 지원 가능한 개방형으로 나뉨)


자율학교와 자율형 공립고에서 실시하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그간 신청학교의 15%만 교장자격증 미소지자가 교장에 응모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었다. 다시 말해, 현재 내부형 교장공모를 신청한 학교 중 85%는 교장 자격증 소지자들만 지원할 수 있다. 


교육부는 15%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자율학교나 자율형 공립고에서 교장자격증 미소지자가 참여 가능한 교장공모제를 운영하려고 할 경우 이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국내 최대 교원 단체인 한국교총은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규탄 및 철회 촉구’ 집회를 갖고 ‘나쁜 정책, 무자격 교장공모 전면 확대 폐지 청원’에 돌입했다.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그리도 부르짖던 분들이 머리에 빨간 띠까지 동여매고 거리로 나선 걸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도대체 교총이 말하는 교장의 자격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표를 살펴보시라.


<교사가 승진을 위해 쌓아야 하는 점수>  
 1. 연구학교 : 11년 (2023년부터 8.03년=100개월) 
 2. 학교폭력가산점: 1점 (1년에 0.1점씩 10년) 
 3. 연구점수: 3점 (대학원 석사 1.5점) 
 4. 연구대회: 1등급 1점, 3등급 0.5점 (전국대회 1등급 1.5점) 
 5.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시험점수: 100점에 가까울수록 유리(100~80점 사이가 0.5점 차이) 
 6. 1정 점수 80점 대 : 농어촌 다녀와야 함. 농어촌은 1개월에 0.01 
 7. 부장경력 7년, 교사경력 20년 
 8. 연수에서 95점 초과 점수 : 1점 
 9. 60시간 연수 3개 
 10. 2018년부터 한국사 3급, 인정연수 60시간 
 11. 워드자격증 1급 
 12. 교장이 주는 근무평정점수 3년 
 (*점수 계산방법은 위의 내용보다 훨씬 복잡하나 생략) (*시도 마다 매해 조금씩 다름)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 


현재 교사 승진시스템은 기회부터 평등하지 않다. 승진을 하려면 연구학교 근무 경력이 많아야 하는데 불합리와 우연의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들은 여러 방법으로 이동 점수를 쌓아 연구학교를 찾아가거나, 인맥을 동원해 초빙되어 간다. 이동 점수를 쌓고 인맥을 이용하는 방법이 결코 합리적이고 투명하지 않다. 능력과 상관없는 우연의 요소도 큰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연구학교에 첫 발령이 난 교사는 그렇지 않은 동기 교사에 비해 출발부터 월등히 높은 점수를 얻는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근무하는 학교가 관리자와 일부 교사들의 노력으로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점수를 받기도 한다. 


과정도 공정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가산점은 학교폭력 해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교사가 아니라 학교폭력 보고서를 쓰는 교사들에게 부여된다. 매해 학교별로 점수를 받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교사들 사이에 눈치 보기 경쟁이 치열하다. 많은 학교가 주로 고학년 교사들에게 보고서를 쓸 기회를 준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3학년이든, 4학년이든 어느 학년에나 발생한다. 무엇보다 학교폭력 가산점과 학교 폭력의 실제적 개선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 주먹구구도 이런 주먹구구가 없다.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수준을 넘어 교육의 본질 자체를 훼손하는 지경에 이른다. 현재의 승진제도는 수업, 연구, 학생 돌보기에 충실하고자 하는 교사들을 도태시킨다. 각종 연구대회와 전시 행정성 사업에 몰두하고 인맥을 쌓아가는 교사들이 더욱 쉽게 교장 자리에 오른다. 어느 직장이나 승진하려면 이 꼴 저 꼴 더러운 꼴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학교다. 교사들이 연수 시간을 채우기 위한 마우스 클릭질과 보고서 작성 등 가시적 성과에 몰두하는 동안 학생들은 승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관리자가 주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충성, 충성, 충성! 학교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은 이렇게 질식되어 간다. 


덧붙여, 교총이 말하는 기준대로라면 사립학교의 교감과 교장들은 모두 ‘무자격자들’이다. 사립학교에서 관리자의 임면은 사학재단 정관에 따른다. 재단 이사장의 뜻에 달렸다는 뜻이다. 승진을 원하는 사립학교 교사들은 점수를 쌓는 것이 아니라 재단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등 전체에서 사립학교 비율은 대략 34.5%, 서울지역 사립 고등학교는 62.9%에 이른다. 교총 논리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무자격 교장들이다. 이 무자격 교장들의 업무수행능력과 리더십에 대해 입증할 책임은 애초 자격 논란을 일으킨 교총에게 있다고 본다.  


교육 권력은 교육주체로부터 나온다 


최근 MBC 사장으로 부임한 최승호 씨는 PD 출신이다. 그가 방송국 사장이 되기 위해 점수를 쌓고 사장 자격증을 딸 필요는 없었다. 병원장이 되기 위해, 검사장이 되기 위해 의사 자격과 검사 자격 외에 다른 자격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 직업 본연의 전문성에 철학, 소통 능력, 리더십, 구성원들의 지지 등이 필요할 뿐이다. 유독 학교에 존재하는 조잡한 교장 자격증 제도는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학생과 교사, 나아가 사회에 심대한 피해를 끼친다. 

가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문제는 현행 승진제도가 아니라 일탈 행동을 하는 일부 몰상식한 교장들이고, 이들의 결함을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물론 훌륭한 교장들도 많다. 또 확실히 예전보다 민주적인 교장들이 늘었다. 문제는 그것이 복불복 즉, 교장 개인 인품에 좌우되는 현실이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법과 제도로 상식을 안착시키는 것이 문명사회의 모습이다. 조선 시대에도 훌륭하신 양반님들은 다수 존재했지만 문제는 양반의 인품이 아니라 '신분제도' 그 자체였다.


                                                  문제는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세종대왕이 아닌, 교육주체들이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임명하는 교장이 필요하다. 더 이상 학생과 교사들이 상식적인 교육 환경을 ‘우연처럼’ ‘은혜 받듯이’ 누려서는 안 된다.  


결국 승진제도 개혁은 권력을 누구의 손에 쥐어 줄 것인가의 문제다. 기존의 시스템은 실무에서도 열외된 교장이 학교의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다. 교육기관을 획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유리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자율학교 내부형 공모제 확대는 비록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기존 승진 체제에 균열을 일으켜 수평적 체제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가 으레 그런 것처럼 시행착오를 겪고 어떤 형태로든 소란과 잡음 또한 발생하리라 본다. 그럼에도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교육의 권력은 교육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로부터 나온다.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은 오로지 뿌리부터 민주적인 교육환경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이 글은 딴지일보에 실렸습니다.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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