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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an 26. 2020

기생충, 디파티드, 거리감

영화 ‘기생충’을 향한 다양한 반응이 재밌다. 각종 국제 영화제와 해외 관객들이 쏟아내는 극찬, 이 영화에 대한 불쾌감을 토로하는 일부 한국 관객들의 반응의 조합이 묘하다. 불쾌감을 말하는 목소리들은 한방향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실존을 위협하는 빈곤의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는 시선, 빈곤의 대상화라는 윤리적 지점 말이다. 


어찌보면 동전의 양면 같다. 일전에 우치다 다쓰루는 세계 문학은 ‘자신이 있는 곳을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능력’을 갖춰야 쓸 수 있다고 했다. 세계 문학은 타국의 독자들과 공유하는 대상에 대한 '거리감'이 필요하며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적 성공을 설명한다고도 했다. 영화 기생충이 갖는 ‘거리감’은 어떤 사람들에게 지독한 불쾌함으로 다가오는 반면, 해외 관객들에게는 정통성있는 관객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로선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구석이다. 

   

설 연휴 기간동안 영화 ‘디파티드’The Departed(2006)를 다시 봤다. ‘무간도’(2002)의 리메이크작인데 개봉 당시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무간도'의 전통적 홍콩 영화 감성을 뭉갠 '디파티드'의 비열한 캐릭터 묘사, 냉정하고 황량한 접근법 때문이다. 한국 영화평론가들의 반응도 미지근하거나 실망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두 주인공의 정체성 분열과 유사 가족의 역동을 ‘보여주기만 하고 탐구하지는 않았다’(허문영), '골목 대장답게 휘어잡지만 말이 많다'(박평식), '원작 그늘 속에서도 서스펜스 만드는 솜씨만은 일급'(이동진).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을 수상했다. 물론 수상 여부가 작품성을 완전히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사이트를 뒤져봐도 미국 영화평론가들의 반응이 한국 평론가들보다 호의적인 것 같다.


이유를 몇 가지로 추측해 본다. 일단 '무간도'에 흐르는 홍콩 영화 감성을 공유하고 추억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즉 한국인들은 '무간도'와 '디파티드'를 떼어 생각하기 어렵지만 서구인들 눈에는 완전히 다른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단순 리메이크작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주지는 않았을듯). 또 실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무간도'를 보지 않고 각본만 읽고 작업을 했고, 본인이 '무간도'에서 영감을 얻은건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매우 다른 세계관의 영화라고 말했다. 두번째 이유로, 나는 한국인들이 이민자들의 '무력감과 공포' 그 현현으로서 드러나는 '폭력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는 물론 다른 역사와 전통, 사회 환경 때문이다. '무간도'의 기저에 홍콩인들의 정체성 혼란이 있다면, '디파티드'에는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로부터 이탈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아이리시 이민자들의 몸부림이 있다. 미국은 공히 이민자들의 나라다. 아이리시 이민자들이 아니라도, 그들이 공유하는 근원적 불안과 공포 그리고 무력감을 미국인들은 좀 더 쉽게 읽어냈거나, 공기처럼 흡입하지 않았을까, 라고 근거없이 추측해본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나는 영화 '기생충'은 너무 깔끔하고 정확해 재미와 감흥이 크지 않았다. 또 '무간도'와 '디파티드'를 굳이 비교하자면 '디파디드'가 한 백배쯤 더 좋다. 일단 내가 싫어하는 후까시와 신파가 없고 빠르고, 폭력적이고, 전혀 피씨하지 않은 언어유희가 좋다('디파디드'는 대사에 단어'fuck'이 237번 나온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홍콩 영화를 무지막지하게 보며 자랐고, 실생활에서는 나름 피씨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가 '디파티드'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취향은 물론이고 적당한 거리감과 피씨함으로부터의 해방감도 작용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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