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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an 28. 2020

에이미

비난하지도, 동정하지도 않기

2019년 여름 미국 여행길에서 다큐 영화 '에이미'Amy(2015)를 봤다. 한국 넷플릭스에는 없었는데 미국에 가니 리스트에 떠서 이때다 싶었지만, 언론이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소비하는 상투적 방식의 긴 버전이 아닐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고는 엄습해오는 불안함과 애잔함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기억이 난다.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균형감각과 공감능력,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거의 곡예사 수준이다. 이 다큐 영화는 천재적 재능과 자기 파괴성이라는 쉬운 클리쉐를 만들거나, 교훈적으로 훈계하거나, 심지어 에이미의 인생을 끝장내다시피 한 두 남자(아버지와 남편)를 간단히 비난하지도 않는다. 7살 어린 소녀가 아닌 이상 모든 책임을 외부로 돌릴 수 없으니까대상을 비난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애정을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는 노력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박 겉핥기식의 서사가 되지 않으려면 과단성과 용기도 필요하다. 카파디아 감독은 이 모든 걸 해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죽은 2011년 여름에도 나는 여행 길에 있었다. 그때 들었던 한 영국인의 거친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그 중독자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지. 뭘 기대해? 재능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냐고. 멍청한 정키...” 나는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니라도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막연히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특히 그녀가 죽기 얼마 전 녹음했던, 어린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재즈뮤지션 토니 베넷과의 듀엣 장면을 보고 나서, 나는 2011년에 못했던 말을 하고 싶어졌다. 


"천재 뮤지션들이 죽고 나서 모이는 천국에서 에이미는 꼭 이런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겠지. 그리고 너는 그곳에 입장하지 못할거야."

https://www.youtube.com/watch?v=_OFMkCeP6ok

Tony Bennett, Amy Winehouse - Body and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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