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2) : 이족보행의 시대

인간은 왜 두 발로 걷는가

by 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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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닌들은 어째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한걸까?


빅풋 연구로도 유명한 인류학자 존 네이피어가 두 발로 걷는 것을 두고 ‘위험이 따르는 사업(risky business)’라고 표현했듯, 그리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도 있듯, 나무 위에서 절뚝절뚝 두 발로 걷는 것은 상당히 고난도의 위험천만한 도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발굴된 많은 이 시기의 호미닌들에게서 나무에서 떨어져 치명상을 입은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죽을 위험을 감수할만한 이익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어째서 이런 위험을 감수했던걸까?



효율적 보행자 가설(Efficient Walker Hypo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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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서 두 발로 서면, 일단 멀리있는 과일에 손을 뻗기 유리해지고, 이 숲에서 저 숲으로, 들판 아래서 나무 위로, 타잔처럼 뛰어 돌아다니기에도 훨씬 힘이 덜 들게된다. 온 몸으로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두 발로만 까딱까딱 돌아다니니까. 이를 통해 숲에서 네 발로만 사는 원숭이들에 비해서 그 외 지역에서의 몇가지 먹거리 선택지가 늘어난다. 게다가, 뒤의 환경 가설에서 후술하겠지만, 이족 보행은 미어캣처럼 주위를 살피기에도 더 유리하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는데, 여러모로 이득이나 위협을 효과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두 발로 걷는 것은 ‘숲에서도’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이족 보행은 뜻밖의 이득도 가져왔다. 보행에 종속돼있었던 두 앞발을 두 팔로 해방시킨 일대 혁명이었다. 이제 호미닌은 해방된 두 팔로 ‘무언가’를 운반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 호미닌은 젖먹이 새끼를 품에 안고 다님으로써, 먹이를 찾으러 나갔다온 사이를 틈 탄 포식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실종’시킬 확률을 줄일 수 있었으며, 수컷 호미닌은 연모하는 암컷 호미닌들에게 두 손 가득 가져온 달달한 과일들을 구애의 선물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손에 쥔 무언가는 짱돌, 즉 도구가 되었다.


오언 러브조이가 1988년에 제시한 또 다른 가설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진화의 결과, 어떤 초기 호미닌들(이를테면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나 오로린 투게넨시스)은 전에 비해 아주아주 약간 뇌가 커지는 동시에 나무 위에서 두 발로 더 쉽게 걸을 수 있게 골반이 변형됐다. 뇌가 커지자 자연스레 두개골도 커졌고, 골반이 비틀리자 산도는 좁아졌다. 머리가 더 커진 아이를 더 좁아진 산도로 낳으려니, 아이와 함께 죽는 산모가 늘어났고, 미숙아를 낳는 산모가 자연의 선택을 받게되었다.


이렇게 미숙한 채로 빛을 보게된 아이들은 성체가 되기전까지 외부 위협에 쉽게 노출됐을 것이다. 아기는 어미의 보살핌에 더욱 의존하게 되어, 아이를 돌보는 데 여념이 없는 어미 또한 타 개체(대부분의 경우 수컷 파트너)에게 식량을 제공받아야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조 영장류 짐승들이 그러했듯, 어떤 책임감없는 초기 호미닌 수컷들은 암컷이 새끼를 낳자마자(즉,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다른 암컷을 찾으러 떠나버리기를 반복했을 것이고, 그런 상황 속에서 비참하게 버려진 암컷과 새끼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암컷들은 자연스레 새끼를 부양해줄 수 있는 다정한 수컷들, 그리고 더 많은 식량을 손쉽게 날라줄 수 있는 이족 보행에 능한 수컷들을 선호하게 됐을 것이다. 즉, 생식 상대를 더 까다롭고 신중하게 골라야하는 시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이족 보행에 능한 수컷이 선택받는 과정이 반복돼, 더 많은 개체가 이족 보행에 능해질수록, 비례해 산도가 더 좁아졌을 것이고, 아이는 더욱 더 미숙한 채로 태어나게 되는 일종의 ‘되먹임고리(feedback loop)’가 형성됐다.


이 과정을 통해 점차 공격적인 수컷이 도태, 송곳니의 날카로움 정도나 암수 체격차이로 대표되는 성적 이형성이 점차 적어졌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데, 실제로 정확히 이 시기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와 오로린 투게넨시스에게서 그런 경향이 발견된다.


환경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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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장류는 밀림으로 빼곡한 열대 우림, 즉 상록 우림에 산다. 또 어떤 영장류, 이를테면 침팬지들은 개방 삼림지역에서도 곧잘 살아간다. 그리고, 사바나 관목지(Shrubland)*에 사는 영장류도 있다. 수백만 년 뒤의 호미닌도 훗날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그리고 이족 보행의 완성또한 이 사바나로 떠난 여행과 상당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사바나가 이족 보행을 낳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이족 보행은 사바나를 마음의 고향으로 택한 것이다.


*관목지는 대체로 나무 높이가 3m를 넘지않는 지역이다. 개코원숭이, 파타스원숭이 등이 산다.


동아프리카 지구대 형성 사건은 히말라야 산맥이 솟고, 인도네시아의 해로가 막힌 사건과 함께 초창기 인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인해 300만~400만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비그늘 현상이 동아프리카 내륙 지역에 나타나 가물게 되었고, 이곳의 열대우림은 점차 마르기 시작해, 서서히 건조한 바위투성이 사막 관목지 배경의 사바나 기후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바나 기후에 적응한 동식물들이 새롭게 번성하기 시작한다.


영양과 얼룩말같은 거대한 초식동물들이 초원을 메웠고, 그에 따라 이들을 잡아먹는 대형 육식동물들도 번성했다. 사바나 곳곳에 초식동물의 반쯤 썩은 사체들(사체가 생기는 원인은 포식자에 의한 피살보다 자연사가더 많았다)이 생겨났고, 또 그 틈은 청소 동물들의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어떤 호미닌들도 이 틈에 합류, ‘사바나의 청소부’를 자처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과도기에, 이 부근의 기후와 자연환경, 그리고 생물학적 다양성은 매우 복잡해졌다. 숲 바로 옆에 너른 들판이 있었고, 그 바로 옆에 높디높은 설산이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고원이 있었고, 그 옆에는 가파른 골짜기가 있었다. 조금만 위도와 경도를 옮겨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해발고도가 휙휙 바뀌는 이 곳은 가혹하고도 매력적인 기회의 땅이자, 진화의 가속실험장이었다. 이중에서 특히 초기 호미닌의 주 무대로 주목되는 곳은 사바나 초원과 삼림 지역 사이에 끼인 이른바, ‘모자이크’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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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종이 하루아침(사실은 십수만 년)사이에 멸종당했고, 다시 수많은 집단이 새로운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어떤 무리들은 무식하게도 거대한 체격과 튼튼한 턱을, 또 어떤 무리들은 비리비리한 체구와 기괴하게 생긴 대두(짐작했겠지만 우리의 직계 조상인 그들은 후손들에게 ‘남쪽의 원숭이 인간’,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이라 불릴 것이다)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호미닌 무리가 하루아침(사실 수십만 년)만에 옛 전통과 육신을 버리고 새롭게 탈바꿈, 즉 발산했다.


이족보행 또한 그 탈바꿈을 통해 마침내 완성된 하나의 테크트리 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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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족보행은 뜨거운 사바나의 열기를 더 좁은 면적으로 받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신체의 윗부분을 지면으로부터 일렁이는 지열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했으며, 대평야를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신체스펙의 포식자들을 더 잘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바나에서의 이족보행은 기괴한 고인물 스텝이었다. 그들은 사자같이 생긴 맹수에게 종종 잡아먹혔고, 재빠르게 달아나는 사슴을 따라잡지 못했을지언정, 척추를 곧추세우고 두 발로 위태롭고도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며, 끊임없이 사바나를 떠돌 수 있었다. 사바나의 그 어떤 동물도, 호미닌보다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스텝이, 먼 훗날, 그들이 지나가는 곳 마다 거대육상동물들의 상아탑을 세우는 전 지구의 최상위포식자로서 군림케 하리라.


하지만 동부아프리카가 사바나로 변해버리는 건 먼 훗날의 이야기고, 700만 년 전의 호미닌은 아직, 작고 나약한 나무 위 원숭이인간에 불과했다. 아직 이들은 채식주의자였고, 아주아주 가끔씩 기회주의적으로 육식을 했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고기 맛을 보기 시작했다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약 200만 년 전 쯤부터이다.


환경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았고, 숲을 따라 피난하는 것도 그들 스스로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느릿느릿 벌어졌을 것이다. 아직 어색하게 이족보행하는 호미닌들에게, 굳이 위험으로 가득한 사바나를 어슬렁거리는 것보다 수분기 있는 옆동네 땅과 숲에서 살아갈 기회는 여전히 많았다. 아직, 인간은 사바나가 아니라 숲에 살았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 시기의 사바나는 여전히 이따금 두 발로 잘 걷는 어떤 용감한 호미닌 집단이 도전했다가, 잡아먹혀버리고 마는 호미닌의 무덤에 가까웠으리라.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돌릴수록, 우리의 조상들은 그 어떤 ‘인간적’ 특성도 거저 얻지는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부분의 특성들이 다른 수많은 경쟁자들과 함께, 아주 작게 꾸물거리고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가 인간성과 결부돼있다고 여기는 대표적 특성들은 700만 년 전엔 생태적 압력이라는 벽에 간신히 붙어 헐떡이는(언제 갑자기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들 사라졌다. 어떤 두 발로 잘 걷는 호미닌들은 결국 절멸했을 것이고, 그 후손들은 옆 동네의 숲에서 네 발로 더 잘 걷는 편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이 가여운 선조들은 어쩌면 우리의 DNA에 네안데르탈인들의 흔적이 있는 것처럼, 더 침팬지나 고릴라처럼 생긴 이웃 종들에게 유전적으로 흡수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수십, 수백번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떤 특성이 얼마나 더 빠르게,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는 다만 외부의 환경과 호미닌 내부에 도사린 발생학적 특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이 선조들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물가의 숲에 살았던 초기 호미닌들 중 적어도 한 갈래가, 위에서 언급한 가설들 사이의 연쇄작용에 자연스레 이끌려 이족 보행을 더 정교하게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백만년 간 네 발로 걷는 친척들과 부대끼며 마침내 우리에까지 이르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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