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3) : 호모속의 출현

돌을 쪼개고 말을 하다

by 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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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이족보행을 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수백만년 동안 모습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번성했던 속이다. 그들은 조상들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게 더 자주 두 발로 걸었지만, 여전히 숲이 그들의 왕국이었다. 낮에는 두 발로 땅을 걸어다녔고, 밤에는 둥지가 있는 보금자리 나무에 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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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만년 전의 어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집단은 처음으로 돌을 쪼개 손에 쥐었다. 거대한 마천루, 하늘을 날아다니는 강철 새, 달에 도착한 로켓, 그리고 손에 쥘 수 있을만큼 작은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여기에 기원을 둔다.


롬크위(Lomekwi) 석기라고 불리는 이 돌조각들은 얼핏봤을땐 그냥 날카로운 돌멩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자연 상태에서 부숴진 돌멩이들과 현저히 다른 패턴을 하고 있었다. 몸돌(core)에서 박편(flake)을 의도적으로 떼어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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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의도적으로 부서지기 적당한 몸돌을 골라 날카롭게 떼어냈고, 그렇게 만든 석기를 시체에서 고기를 더 효율적으로 발라내는 데에도 사용했다. 일찍이 디키카(Dikika)에서 발굴된 발굽동물의 339만 년 전 뼈가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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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는 동물의 이빨이 U자 모양의 패인 흔적을 남기는 것과 달리, 날카로운 돌로 긁은듯한 V자 절단흔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그 흔적은 날카로운 돌로 뼈를 쪼개 그 안에 들어있던 골수를 빼먹을 때 남았을 것이다.


1*caEEutLn7lo6ivJbApJXmQ.jpeg C3 식물



수백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그들의 외모와 달리 그사이 식단은 더 다양해졌다. 조상들처럼 C3식물을 주식으로 삼았지만, 이내 사바나에 풍부한 C4 식물로 반찬가짓수를 늘렸고, 여기에 투박하게 쪼갠 돌멩이로 베어낸 날고기반찬까지 추가했다.


1*k8s4N55x9mjYoQ3FrIwWkA.jpeg C4 식물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풀’은 C3식물로서 대체로 축축하고 서늘한 곳에서 주로 번성하는 반면, 사바나의 고온건조한 기후에서는 특히 C4식물이 잘 적응한다. C4식물은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진 700만 년 전을 기점으로 지구 상에 번성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C4 식물이 단기간에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뒤 세포 안에 고정시켜 더 효율적으로 광합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기를 사용하는 이 영리한 원숭이 인간들은 사실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대부분은 석기를 사용할 줄 몰랐다. 그리고 300만 년 전 쯤 시작된 급격한 기후변화는 석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 가혹한 절멸의 폭풍이나 다름없었다.


울창했던 숲에서 번성했던 대부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라졌고, 사바나 초원 귀퉁이에서 소심하게 돌을 만지작거리던 이들이 갑작스레 새로운 주역이 되었다. 그리고 수십만 년이 더 지나자, 이들의 후손이 무언가 다른 존재들로 변했다. 최초의 호모속, 즉 우리 종족의 속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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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LD 350–1의 하악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의 전형적 특징들이 뒤섞여있다. 이를 통해 그들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의 마지막 후손이자 호모속의 첫번째 조상임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발굴지인 리 아도이타(Lee Adoyta)는 280만 년 전에는 전형적인 삼림-사바나 모자이크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 하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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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 하빌리스는 이전의 롬크위 석기보다 더 정교한 올두바이 석기를 사용했고,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한 630cc의 뇌를 가지고 있었다.


1*CTfdzInOru9ZEv7CXlc_wg.jpeg 올두바이 석기



더 거대한 뇌는 더 많은 효율적 식량을 필요로 했는데, 이들은 고기반찬의 비중을 늘림으로써 (정확한 비중에 대해선 학계 논쟁중) 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고기와 골수는 각종 필수 아미노산과 미량영양소가 풍부한 동시에 양대비 칼로리가 높다.


필수 아미노산: 히스티딘, 발린, 류신, 이소류신, 메티오닌, 트레오닌, 라이신, 페닐알라닌, 트립토판
미량영양소: 철, 아연, 비타민A 등


고기반찬의 대부분은 이미 다른 포식동물들이 반쯤 뜯어먹고 버린 것이었다. 포식자를 목격한 호모 하빌리스는 용감하게 따라가 그들이 먹다남은 시체를 조잡한 석기로 베어먹었는데, 특히 지방이 풍부한 골수와 뇌를 파먹는데 열중했을 것이다.


이들은 수만세대 동안 땅 속의 괴경을 캐먹고 돌을 쪼개고 시체를 뜯어먹으며 살다가 갑작스레 사라지는데,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숲의 소멸이 원인일 것이다. 이들도 여전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숲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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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는 아슐리안 석기 제작 기술을 발달시켰다. 100만년 넘게 지속된 단순한 형태의 선배들과는 완전히 다른 버전 2.0 기술이었고, 실제로 아슐리안 석기는 모드 II 석기로도 불린다. 이전 단계의 석기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요소는 바로 대칭성이다. 한 쪽은 잡기 쉽게 뭉툭했고, 반대편은 날카로운 대칭의 단면을 지닌 이 석기에선 인위적인 의도성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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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먹도끼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먼저, 날카롭게 부수기 적당한 돌멩이를 골라야했다. 그들은 여러 돌멩이들의 서로 다른 성질을 이해하고 기억했으며, 쓸만한 돌들의 산지를 머리 속 가상의 지도에 저장해뒀을 것이다. 어떤 석기는 무려 10km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가져온 돌로 제작됐다.


0*FWusjeK-wIfRdyvM.png 현생인류가 올두바이 석기와 아슐리안 석기를 만들 때, 각각 뇌 활성화 차이: 단순한 올두바이 석기에 비해, 아슐리안 석기를 만들려면 머리를 좀 더 굴려야했을 것이다



그렇게 먼 곳에서 무거운 돌들을 운반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만일 신중하지 못하게 잘못 부숴버리면 그 동안 들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간다. 그들은 타격하기 전, 미리 완성품의 모습을 ‘상상’해야만 했을 것이다. 기회는 한번 뿐이었다. 실패하면 왕복 20km의 행군이 그들을 기다린다. 이 모든 가혹한 과정 속에서, 언어와 지성의 맹아가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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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과 기억의 능력을 더 발달시킬 수 있도록 호모 에렉투스는 꾸준한 선택압력을 받았다. 이후 수십만년간, 이들의 뇌용량은 투르카나 호수 유역이라는 같은 생활영역을 공유한 친척종 호모 하빌리스들보다 200cc 가량 더 커지게된다.


이들은 기저신경절이 거의 발달하지 못했고, 신경관 너비가 좁았기에 우리처럼 유창하게 대화를 하지는 못했겠지만, 어떤 어리석은 호모 에렉투스나 어린 개체가 질 좋은 돌멩이를 못쓰게 부숴먹는 실수를 할 때 분노의 고함을 쳤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신진대사가 활발해 막대한 에너지를 빨아먹는 뇌가 단순히 더 멋진 돌 조각을 깎기 위해 커진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거대한 뇌를 진화시키는 데 작용한 압력은 사회적이라기보다는 생태적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들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은 여전히 가혹했고, 거대한 뇌를 유지하려면 그에 걸맞는 효율적 신체를 먼저 준비시켜 놓아야했다.


이 시기에 호모 에렉투스의 머리와 어깨 부분을 제외한 온 몸의 털이 서서히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열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털은 본래 네 발로 걷는 사바나의 동물들에겐 필수적 냉각도구였다. 만일 털이 없어도 따가운 자외선은 피부가 대신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그 탓에 체온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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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과 달리 호모 에렉투스는 두 발로 기괴하게 걷는 떠돌이들이었다. 일렁이는 지열로부터 상반신이 멀었고, 햇빛을 받는 면적도 적었으며, 시원한 선풍을 더 넓은 면적으로 받았다. 호모 에렉투스는 즉각 전혀 다른 냉각체계를 발달시켰다. 열을 덜 받는 것에서 받은 열을 더 효율적으로 배출하는 방식으로의 일대 전환이었다.


이 방식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털 대신 피부에서 열을 방출하는 편이 나았고, 덥수룩하게 피부를 뒤덮고 있는 털은 햇빛을 직사로 받는 머리나 어깨, 가슴팍 일부분을 제외하면, 방해물로 전락했다. 자연스레 이외 부분의 털은 가늘어지고, 짧아졌던 것이다. 털없는 원숭이는 점차 떠도는 것에 특화가 되어갔다.


어떤 곳에 사는 이들이 급격한 기후위기에 직면하거나 더 똘똘한 친척종의 등장으로 인해 압력을 받는 경우, 혹은 열대의 주기적인 역병으로 픽픽 쓰러져나가는 경우, 자연스레 떠올릴만한 해결책이 하나 있다. 그곳을 떠나는 것이다. 초창기의 호모속은 점차 효율적인 떠돌이들이 되고 있었고, 압력에 직면한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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