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카카오를 닮은 직육면체 형태의 똥을 누는 것으로 유명한 웜뱃은 웜뱃과(Vombatidae)에 속한 호주 유대류의 총칭임.
얘들은 대체로 몸 길이가 약 1m에 작고 뭉툭한 꼬리를 지니고 있으며 몸무게는 20~35kg 사이.
적응력이 매우 강하여 온갖 곳에서도 잘 사는 얘네들은 태즈메이니아 섬을 포함하여 호주 남부와 동부 지역의 삼림 지대, 산악 지대, 그리고 황무지에 서식함.
'웜뱃(wombat)'이라는 이름은 본래 시드니 지역의 원주민인 다룩족(Dharug)의 표현에서 유래했다. 원주민의 방언에 따라 웜뱃을 부르는 이름은 움뱃(whombat), 워맷(womat), 웜백(womback)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갖고 있었음.
(참고로 다룩족의 언어에서 유래한 다른 동물 이름들로는 '딩고(호주 들개)', '코알라', '왈라비' 등이 있음. )
웜뱃의 생김새가 오소리와 비슷하게 생겼기에 호주에 들어온 유럽계 개척민들은 종종 웜뱃을 오소리(badger)라고 불렀고, 이때문에 호주의 지명 중에는 배저 크릭(오소리 계곡)이나 배저 코너와 같이 오소리가 붙은 곳이 많음.
다른 유대류 동물들로부터 웜뱃과(Vombatidae)가 언제 처음 갈라져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략 4천만년 전에서 2천 5백만 년 전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됨.
웜뱃과에 속해있던 옛 웜뱃속 중에는 오늘날의 귀여운 웜뱃들과는 달리 아주 거대하고 웅장한 녀석들도 존재했는데, 최대 몸무게 360kg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스콜로누스 Phascolonus 속이 대표적임.
파스콜로누스속의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종인 파스콜로누스 기가스 Phascolonus gigas 는 호주 전역에 분포했으며 담수원 근처에서 하루종일 풀을 뜯어먹으며 살았을 것인데, 오늘날의 웜뱃이 굴파기의 명수인 것과 달리 이들은 땅을 파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됨.
안타깝게도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4~5만년 전에 여타 호주의 거대동물들과 함께 세트로 멸종했는데, 당연하지만 현생인류가 처음 호주에 발을 들인 그 시점임... 호모 사피엔스 또 너야!?!!
웜뱃의 특징들
웜뱃은 박명박모성이며 낮에는 대개 굴 속에서 지내지만 서늘하거나 흐린 날에는 먹이를 찾아 밖에 나가곤 함.
웜뱃은 설치류와 유사한 앞니와 강력한 발톱으로 굴을 파는데, 이 이빨은 마찬가지로 설치류처럼 계속해서 자람. 이빨이 계속해서 자라는 것은 유대류 중 웜뱃과가 유일함.
웜뱃은 굴을 중심으로 주위의 영역을 방어하는 영역 동물임.
웜뱃은 하루에 똥을 80개 넘게 싸는데 각각의 똥은 다소 인위적으로 보이는 직육면체의 형상을 띠고 있음. 직육면체 똥은 영역 표시 및 짝짓기를 위해 배열하는 데 있어서 생물학적 이점을 제공함. 한 마디로 석탑처럼 쌓을 수 있다는 것임. 웜뱃은 한 번 쌀 때마다 4개에서 8개 정도의 똥을 쌈.
신진대사가 매우 느려 느릿느릿 움직이는 웜뱃은 섭취한 음식의 영양분을 흡수하는 데에는 무려 2~3주 가까이 걸리는데, 이 때문에 웜뱃의 똥은 매우 건조한 것임. 웜뱃은 초식 동물이며, 주로 벼과 식물(Poaceae)과 사초(Cyperaceae, 莎草)류, 허브나 나무껍질, 그리고 식물의 뿌리 등을 갉아먹음.
웜뱃은 다양한 장내미생물군(Gut microbiota)을 보유하고 있는 후장 발효 동물임. 간단히 표현하자면, 웜뱃의 소화기관은 마치 재활용 공장과도 같다는 것임. 소화해내기 힘든 영양학적 쓰레기, 즉 식물의 섬유질이 들어오면 웜뱃 몸 속에 있는 미생물들이 열심히 재처리 작업을 통해 '단쇄 지방산'이라는 쓸모있는 에너지원으로 전환함.
웜뱃은 이런 미생물 발효에서 나오는 에너지만으로도 필요 열량의 6할 가량을 충당함. 그러나 사육 상태의 웜뱃은 다양한 식물을 섭취하기 힘들어 훨씬 희소한 장내미생물군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고, 야생 개체에 비해 훨씬 적은 양(3할)의 칼로리만을 미생물 발효로부터 얻음.
후장 발효는 인간을 비롯한 단일 구획의 위만을 가진(Monogastric)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소화 과정임. (그러나 인간은 에너지 섭취의 대부분이 소장에서 이뤄지고 5~10퍼센트만을 후장 발효에 의존함.)
후장발효를 하면 식물의 섬유질을 각종 박테리아, 고세균, 진핵생물 등을 포함한 공생 미생물의 발효를 통해 소화시킬 수 있는데, 장비류(코끼리)나 말, 코뿔소와 같은 홀수의 발굽을 지닌 기제류 동물들처럼 거대한 초식동물들뿐 아니라, 토끼나 코알라, 그리고 설치류와 같은 자그마한 동물들의 위장에서도 후장발효가 일어남.
후장 발효 동물은 일반적으로 전장 또는 중장 발효 동물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맹장과 대장을 가지고 있음. 날다람쥐나 토끼와 같은 소형 후장 발효 동물의 경우, 자신들의 몸길이보다 열배나 더 긴 소화기관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음.
토끼는 맹장에서 섬유질을 발효시킨 뒤 내용물을 맹장변으로 배출하고, 다시 섭취하기도 하는데(흔히 토끼가 자기 똥을 먹는다고 하는 게 이거임), (Cecotrope) 이 과정은 장내미생물군의 복원을 더 쉽게 하고,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줌.
일반적으로 후장 발효에 비해 전장 발효가 섬유질 소화에 있어 더 효율적이라고 여겨지지만, 후장 발효는 나름의 장점이 있음. 섭취 사이에 상당한 휴식기가 필요한 전장 발효에 비해 훨씬 더 자주 이동하며 끊임없이 풀을 뜯을 수 있는 것임. 이는 비교적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유리함.
후장 발효 동물은 많은 섭취량을 가능케하기에 더 큰 몸집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 현존하는 최대의 동물인 코끼리 또한 역시 후장 발효 동물임.
웜뱃은 코알라를 비롯한 다른 많은 유대류처럼 역방향 육아주머니를 갖고 있음. 캥거루와 달리 육아주머니가 뒤를 향하고 있기에 굴을 팔 때에도 흙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지 않음.
이 육아주머니는 개체가 어미 개체가 생식적으로 활발하거나 새끼가 있을 경우에 미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웜뱃이 항미생물 펩타이드(Antimicrobial peptides, host defense peptides / HDPs)를 통해 주머니 내의 미생물군을 적절하게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함. 유대류는 태반류에 비해 적응면역이 결여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
야생의 웜뱃은 대체로 15년 정도를 살지만 사육 환경에서는 대체로 20년 이상을 살 수 있으며, 심지어는 30년을 넘게 살기도 함.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산 웜뱃은 서른 네 살에 죽음.
임신 기간은 20~30일 가량이며 한번에 한 마리를 낳음. 새끼는 6~7개월간 주머니 속에 머물며 15개월 뒤에는 젖을 떼고 18개월 때에는 성적으로 성숙하게 됨.
호주의 들개 '딩고'와 테즈메이니아 데빌, 그리고 독수리들은 웜뱃을 잡아먹음.
이미 멸종했지만, 과거에는 주머니사자나 주머니늑대도 아마 웜뱃의 조상들을 즐겨먹었을 것임.
웜뱃은 포식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몸의 뒷부분 가죽과 연골, 그리고 짧은 꼬리를 발달시켰음. 공격을 받을 때면 웜뱃은 근처의 굴 속으로 들어가 뒤로 돈 상태로 방어력 높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공격자를 막아낼 것임. 웜뱃은 엉덩이로 포식자의 머리를 굴 벽이나 천장에 짓눌러 질식시키거나 심지어는 두개골을 박살낼 수도 있음!
웜뱃은 다른 많은 유대류처럼 자외선을 볼 수 있는데다가 자외선 하에서 생체발광을 나타내기까지 함. 웜뱃의 털에 자외선(UV) 라이트를 비추면 분홍색, 파란색, 녹색 등 형형색색으로 빛남.
이는 다른 유대류나 단공류 동물들에게서도 관찰되는 현상인데, 이러한 생체발광의 목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라 한다. 아무래도 어두운 굴 속에서 이뤄지는 개체 간 사회적 의사소통과 관련있지 않을까?
여러가지 웜뱃들
애기웜뱃속 Vombatus
애기웜뱃 Vombatus ursinus 은 애기웜뱃속 Vombatus 의 유일한 종으로 세 개의 아종으로 나뉨. 호주 본토에 사는 봄바투스 우르시누스 히르수투스 Vombatus ursinus hirsutus , 태즈매니아 섬의 태즈매니아웜뱃 Vombatus ursinus tasmaniensis, 플린더스 섬과 배스 해협의 마리아 섬에 서식하는 배스해협웜뱃 Vombatus ursinus ursinus 이 바로 그들.
본토에 사는 아종이 세 아종 중에서 가장 크며, 큰 개체는 최대 몸길이 1.2m 몸무게는 35kg에 육박한다고.
애기웜뱃속에는 호주 남서부에 살던 해킷웜뱃 Vombatus hacketti 이라는 종이 불과 1~2만 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으나 아마도 인간의 남획으로 인해 멸종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애기웜뱃은 이른바 '생태계 엔지니어'로서, 웜뱃의 땅굴은 식물 생장을 돕고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지가 됨. 한마디로 인싸동물이다.
설치류, 토끼, 가시두더지, 코알라, 그리고 각종 파충류들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웜뱃의 굴을 파티룸으로 활용함.
이는 웜뱃이 영역동물이지만 기본적으로 천적이 아닌 다른 동물에 의해 영역이 침해 당하는 것에 있어서 상당히 관대한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임.
웜뱃은 대체로 하나의 굴에서 평생을 사는데 이 굴은 길이가 최대 20m가량에 달할 수 있으며 때로는 입구가 두 개 이상 존재함. 웜뱃은 이 굴 속에서 대략 1~9일 마다 잠을 자는 장소를 바꿔가며 삶.
털코웜뱃속 Lasiorhinus
남방털코웜뱃 Lasiorhinus latifrons과 북방털코웜뱃 Lasiorhinus krefftii 이 속해있는 털코웜뱃속은 애기웜뱃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귀한 웜뱃들이다.
130만 마리 미만이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방털코웜뱃은 절멸준위협종(NT)으로서 여전히 넓은 지역에 걸쳐 많은 개체수가 살아있지만, 옴을 비롯한 각종 기생충과 외래종인 토끼와의 경쟁 등으로 인해 미래에는 개체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됨.
북방털코웜뱃은 심각한 멸종위기(CR)에 처해있는 종으로,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이미 멸종된 것으로 취급받았음. 그러나 1930년대 퀸즐랜드 에핑 숲 국립공원에서 30여 마리의 개체가 기적적으로 발견된 후 오늘날에 이르자 개체수가 400여 마리 남짓까지 회복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