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펑크에 대해 알아보자

핵폭탄에 담긴 미학

by 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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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의 원자폭탄 투하는 '원자력 시대'를 열어젖혔고, 대중들 사이에서 핵무기에 대한 공포가 버섯구름처럼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참하게 녹아내린 시신이나 피폭자들의 끔찍한 후유증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열이 이루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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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침에 따라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서(D&C)' 책상 밑에 숨는 훈련 따위로는 절대 핵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모를 정도로 대중들이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애써 모른척하는 높으신 분들도 매일 같이 들려오는 상호확증파괴(MAD)의 전조에 벌벌 떠는 시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무서운 세상에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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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톰펑크의 미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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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폴아웃 시리즈에는 멸망한 세상과, 50년대의 로큰롤, 그리고 촌스럽게 생긴 깡통 로봇들이 등장합니다. 이것들이 바로 아톰펑크를 이루는 전형적 요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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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펑크는 기본적으로 1950~60년대의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미래, 그리고 그 미의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복고미래주의의 일종이며, 사이버펑크나 스팀펑크, 디젤펑크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반문화적, 풍자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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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펑크가 그리는 복고미래는 밝고 희망찬 '광선총 고딕'의 디자인이나 '구기' 미학, 그리고 '교외의 핵가족'과 같이 기성세대가 그리는 전통적인 미국의 '정상성'을 한 축으로, 그리고 이와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핵전쟁 이후 멸망한 세계'라는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절망적인 디스토피아 상황을 또 다른 한 축으로 합니다.




기원과 테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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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펑크'라는 단어 자체는 사이버펑크 이후에 만들어졌지만, 그 기원은 사이버펑크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오래됐는데, 훗날 사이버펑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 또한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의 현상금 사냥꾼을 주인공으로 하는 원시적 아톰펑크 작품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필립 K. 딕은 가히 아톰펑크 장르의 '창시자'라 할만합니다. 그가 20대 중반에 집필한 '황금 사나이 (The Golden Man)' (1953)나 '태양계복권(Solar Lottery)' (1955) 모두 냉전 시대의 광기와 핵무기의 위험성을 주제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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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나이(The Golden Man)'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사냥당하는 황금빛 피부의 돌연변이가 등장합니다. 정부 기관의 요원인 주인공은 초능력이나 기형을 지닌 돌연변이들을 추적하고 체포해 연구실로 데려가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돌연변이들은 불임시술을 당하거나 처형됩니다. 주인공이 쫓는 황금 사나이는 황금색 피부와 솜털을 지닌 (마치 지상에 현현한 신처럼) 아름답고 건장한 남성으로,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황금 사나이는 주인공의 약혼녀를 유혹해 탈출하는데, 주인공의 독백에 따르면 이는 지능 대신 '동물적 본능'이 승리할 새로운 진화적 방향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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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복권(Solar Lottery)'은 논리와 확률이 지배하는 차가운 로또의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세계의 지도자는 '퀴즈마스터'로서, 그는 컴퓨터 추첨에 의해 무작위로 선출됩니다. 뿐만아니라 그 '퀴즈마스터'를 죽여야하는 '암살자' 또한 로또로 추첨됩니다. 이 완벽하게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된 암살자가 마찬가지 신세인 세계정부 수장을 죽이려고 이리뛰고 저리뛰는 장면은 모두 TV로 생중계 되어 대중들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일환이 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도 로또로 뽑고, (몇 년을 넘게 재임하기도, 몇 분만에 사망하기도 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평균 수명이 겨우 몇 주 정도에 불과하며 그 암살 과정이 리얼버라이어티 쇼로 중계되는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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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5~60년대 세계가 몇몇 정치 지도자들과 일선 지휘관들의 실수나 변덕에 의해 언제라도 핵폭탄으로 멸망할 수 있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기괴함과는 별개로 이 가상의 미래 세계가 꼭 과장된 공포의 세계라고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기괴하고 냉소적인 미래관, 그리고 실제 현실에 기반을 둔 풍자성이야말로 아톰펑크를 관통하는 핵심적 테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톰펑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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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의 실험실과 우주선, 그리고 방사능 돌연변이와 외계인들, 광선총과 몸에 딱붙는 쫄쫄이 슈트,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과 공기 저항에 유리해보이는 유선형 디자인의 자동차들까지, 때때로 금속이나 유리 장식들로 장식돼있는 이 모든 것들은 네온 조명을 받아 반짝거립니다. 이것들이 바로 아톰펑크의 토대가 되는 광선총 고딕 양식의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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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선총 고딕을 세 단어로 정의하자면, '미래', '과학', 그리고 '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선총 고딕은 보통 싸구려 SF 잡지 소설들에서 유행한 밝은 색감의 낙관적인 미래 사회 분위기를 취합니다. 20세기 초중반의 아르데코 양식을 토대로 크롬 도금된 번쩍거리는 금속성 재질과 외계 행성 및 생물에 대한 판타지적 묘사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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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들은 노란색이나 녹색의 밝은 피부를 지니고, 때때로는 지구 생물들을 이것 저것 조합한 생김새를 가집니다. 광선총 고딕 양식의 패션 또한, 라텍스 재질의 쫄쫄이처럼 합성 소재를 연상시키는 옷에 별, 로켓, 혹은 원자력 등의 문양이 박혀 있는 것이 전형적입니다.




"인류가 겪고 있는 현재의 모든 불안은 막강한 첨단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우주로 진출하면서 모두 깔끔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게, 광선총 고딕이 품고 있는 희망의 메세지라면, 반면 아톰펑크는 "알고보니 달나라로 쏘아올린 로켓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었고, 핵이 탑재돼있었다." 정도의 냉소적인 변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광선총 고딕의 미학이 펄프픽션 속에서나 구현될법한 상상 속의 회화라면, 구기 건축은 그것들을 정말로 사람들이 발딛고 살아가던 현실 위에 구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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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펑크 세계 속의 등장인물들이 잡초 군데군데 나 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걷다가 반쯤 녹슬어있는 어느 식당, 주유소, 혹은 모텔을 바라보면, 바로 거기에 뾰족한 지붕이나 유선형 벽, 그리고 한 때는 달리는 차의 운전자도 금방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했을, 이미 꺼져있는 네온사인 간판이 놓여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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