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호미닌들
인간을 과연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 중 하나이다. 어떤 고생물학자는 그 기준을 DNA에서 찾고, 어떤 고인류학자들은 직립보행할 수 있는 유인원이 최초의 인간이라고 말하기도한다. 여전히 너무 범위가 넓다.
어떤 직립보행하는 호미닌은 작금의 현생인류와 마주쳤을 때 정겨운 인사를 하는 머리를 쥐고는 사과처럼 터뜨려버릴 수도 있다. 정확히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에 갔을때, 원래부터 거기 살고있었던 어떤 네안데르탈인들은 침입자들에게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발적인 사고에 뒤이어, 곧 압도적인 사회성의 격차 아래 현생인류에게 학살당했거나 좋은게 좋은거라고 사랑의 불꽃이 튀어 유전적으로 흡수당했겠지만 말이다. 지금 우리의 유전자에는 대략 2~4퍼센트 가량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 비율은 서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대체로 균일하다.
그리고 많은 직립보행하는 유인원 ‘인간’들은 아주 조잡한 석기나, 혹은 그마저도 활용할 지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인데, 당연히 언어능력도 울부짖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들은 당신을 흥미롭다는 듯이 몇 초간 응시하다가, 한차례 얼굴을 구기며 우끼낏 울부짖고는, 아무런 우호적 인사행위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 당신의 머리를 꽈악 쥔다. 그리고 당신은 잠깐의 고통끝에 … 영원히 행복해진다.
아예 인간의 범위를 좁게 잡아보자. 생물학적으로 두 개체가 같은 ‘종’에 속한다고 선언하기위해서는, 서로 교배해 낳은 자식이 생식력을 가져야한다. 이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우리의 피에 흔적을 남긴 네안데르탈인 또한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를 사는 인간들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 단일종에 속한다. 유전적으로 가장 먼 축에 속하는 두 현생인류 개체는 아무 문제없이 생식력있는 자손을 둘 수 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서로 비슷하다.
요컨대, 우리가 알아보려는 대상이 차고있는 손목시계가 오늘날을 가리키고 있다면 문제 끝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과거, 적어도 20만 년 전 보다 훨씬 이전의 조상님들이 과연 ‘인간적’이었는지를 알아보려하는 중이다.
새롭게 발굴되는 수많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았던 ‘예비 조상님들’이, 과연 그 분들끼리 서로 교배해서 생식력있는 자식을 낳을 수 있었을지 없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들은 뒤로하고, 현재의 잠정적 결론은 우리의 근연종들, 즉 우리의 조상일 수 있는 몇몇 특징을 보유한 조상 후보들을 대충 뭉뚱그려 ‘호미닌’ 이라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떤 특성이 우리의 조상 ‘호미닌’을 여타 영장류들과 구별할까? 우리의 조상들은 처음부터 똘똘했을까? 아쉽게도 지적 능력은 좀 더 후대에 이르러 천천히 발달한다. 최초의 호미닌들은 동시대에 살았던 다른 영장류들, 그러니까 오늘날의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의 조상 격 되는 다른 영장류들과 뇌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작았다. 뇌의 크기가 반드시 지능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처음부터 똘똘하진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대신, 최초의 호미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특성 두 가지는 바로 ‘더 귀여운 송곳니’와 ‘이족보행’이었다. 이 두가지 경향은 1,000만년 전에서 500만년 전 사이, 서로 다른 여러 ‘호미닌 조상 후보’ 군들에게서 독립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우리의 조상들이라고 할만한 분들이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최초의 호미닌 후보는 360만 년 전에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지만 발굴의 진척으로 연대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대체로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700만 년 전)와 오로린 투게넨시스(600만 년 전) 사이 그 어딘가 쯤으로 잡는 것이 현재까지의 다수설이다.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사헬의 유인원’이라는 이름의 이 원숭이인간이 바로 최초의 호미닌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삶의 희망’이라는 뜻의 현지어 별명 투마이(Toumai)로도 불리는데, 이 이름은 가혹한 건기에 무사히 태어난 아이들에게 주로 붙는 이름이라고 한다.
이들의 대퇴골(Femur)과 대후두공(Foramen magnum)의 구조가 우리들과 서서히 닮아가고 있었고, 그것은, 이들이 걷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대퇴골을 현존하는 유인원류와 비교할때, 특히 후면©과 측면 (d) 부분은 우리, 즉 현생인류와 가장 흡사하며, 대퇴골간(shaft of femur)의 기하학적 특징 또한 이들이 능히 두 발로 걷는 데 적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두 발로 서서 걸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신 연구결과(Roberto, Aude, Damiano, & Bernard (2020))는 TM 266(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대퇴골 형태가 이족보행의 증거로서는 불충분하며, 따라서 초기 호미닌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대후두공 위치 변화가 이족보행이 아닌, 뇌용량 증가와 관련있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유대류와 설치류의 대후두공 위치가 뇌용량에 따라 변한다는 것에서 기인한 가설인데, 이들의 뇌가 침팬지보다도 작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뒷받침할만한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정반대의 학설들이 난립하는 것은 발굴된 화석자료들의 양과 질 모두가 빈약한 데에 기인한다. 그들의 척골(Ulnar) 형태 또한, 그들의 팔이 여전히 나무를 타기 위해 최적화 돼있었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들의 팔뚝과 팔꿈치는, 마치 무언가에 찰싹 달라붙어 있거나 기어 오르는데 특화돼있는 것처럼 보이며, 팔만 보면 우리보다는 차라리 오랑우탄에 가까웠다. 이를 통해 그들이 여전히 생의 대부분을 나무에서 보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따금 두 발로 똑바로 서서 비뚝비뚝 걸었을지 모른다.
직립 이족 보행을 두고 ‘위험이 따르는 사업’이라 말했던 존 네이피어 또한, 그 사업이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진척되진 않았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족 보행은 엄청나게 극적이면서도 수많은 인과가 한데 얽힌 대사업이었고, 또한 수많은 단점과 장점이 한 데 뒤엉켜있던 인류 최초의 대실험이나 다름없었다.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조건 하에서야 비로소 최초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었으니까.
원숭이와 인간 사이 그 어딘가에 있었던 이들은 여러모로 인간적이지 못했다. 우리에 비해 꽤나 뾰족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고, 성적 이형성은 컸으며, 과일과 나뭇잎을 주로 먹는 나무 위의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비록 이들의 뇌 크기는 360cc로 오늘날의 침팬지보다도 작았지만, 송곳니의 크기 또한 작았다. 작은 송곳니는 이들의 이빨이 더 인간적인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턱뼈와 눈썹뼈의 형태 또한 더욱 후세 인류들과 닮아있었던 이들은 인간다운 이빨로 벌레, 씨앗, 그리고 식물의 뿌리를 씹어먹고 살았을 것이다.
사헬로부터 백만 년 뒤쯤에 살았던 오로린 투게넨시스는 반면 더 커다랗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송곳니에는 이전의 원숭이인간들에겐 없던 새로운 최신식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마치 우리처럼, 표면이 두꺼운 법랑(琺瑯)으로 뒤덮여있던 것이다.
100만 년 뒤 후배 뻘인 오로린 투게넨시스는 그들의 대퇴골 구조에서 볼 수 있는 패턴들이 이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비롯한 뒷 세대의 습관적 직립이족보행(habitual bipedality) 호미닌들의 구조와 연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사헬이 아니라면 그들이 이족보행의 명백한 선조라는 데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위팔뼈와 손발가락뼈의 형태는 여전히 이들이 뛰어난 나무타기 명수임을 암시했다. 대부분의 삶을 나무 위에서 보내던 이들은, 비록 오늘날의 우리가 볼때 짧은 시간동안 절뚝거리는 것처럼 걸었겠지만, 분명히 두 발로 서서 걸었다.
‘아르디’의 화석은 두 번 발굴되었다. 1992년 아르디가 파묻혀 있던 퇴적물 바윗덩어리가 발견되었을 때 한 번, 그리고 그 퇴적물이 2년의 과정을 걸쳐 섬세하게 해부된 뒤인 1994년에 또 다시 한 번. 인류학자 오언 러브조이는 아직 파헤쳐지지않은 그 퇴적물을 처음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차에 치인 동물을 왜 여기까지 와서 보라고 한거지?”
다행히도 이 퇴적물은 붓질을 거쳐 세기의 발견으로 재탄생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굴 이래, 우리의 역사가 다시한번 앞당겨진 것이다.
오로린처럼 두 발로 걸었던 이 아르디피테쿠스속의 호미닌들도 여전히 나무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숲의 사람들이었던 그들의 손은 오늘날의 침팬지나 보노보와 흡사했다.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577~554만년 전)
아르디피테쿠스속의 카다바라는 종은 많은 학자들로부터 가장 오래된 ‘호미닌’으로 확실히 인정받고 있다. 현재 그들을 증거하는 것은 오로지 이빨 몇 조각과 뼈 몇 점에 불과하지만, 이로부터 현대의 학자들은 많은 사실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이족보행을 했을 것이고, 키가 1.2m에 육박했을 것이며, 신체비율과 뇌의 크기는 침팬지와 비슷했을 것이다. 이들은 후대의 아르디피테쿠스속에 비해 사헬속이나 오로린속과의 유사성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더 원시적인 아르디피테쿠스였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450~432만년 전)
이들은 인간만큼 곧잘 두 발로 걷진 못했지만, 또한 인간이 아닌 유인원들만큼 곧잘 나무를 타지도 못했다. 즉, 보행에 있어서 이들은 절충적이었다. 이들의 두개골은 이들이 오늘날의 침팬지에 비해 덜 폭력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이들은 후대에 나타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해 송곳니가 더 크고 어금니는 작았는데, 그들의 식단이 씹어먹기 쉬운 과일이나 야채 위주였으리라 짐작케한다.
그리고, 아르디피테쿠스속의 후손들 중에는 훨씬 효율적으로 이족보행을 하던 한 기괴한 종족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