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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포시 얹는 마음

아무튼, 리코더

by 홀로움
jesuso_ortiz 작가님의 작품



1교시 시작하기 전과

중간놀이 시간 틈틈이

3, 4학년 친구들의

리코더 연주가 울려퍼지면

학교 건물 전체에 평화가 내려앉는다.


'문리버'와 '흰수염고래'가

이렇게 포근한 곡이었어? 새삼 느끼며

부드럽고 촉촉한 계란찜처럼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여름 바람이 시원하게 지나가는 소리도

수행평가를 잘 보고 싶은 간절함도

따뜻한 멜로디가 되어


가끔 들려오는 매력적인 삑사리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웃으며 위로받고

연습을 통해 뚝뚝 끊어지던 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흔들리고 정확하지 않은 음을 내더라도

끝까지 부는 아이들의 몸짓에 감동받는다.


숨쉬는 법을 잘 몰라서인지

아직도 풍선을 겨우 작게 불지만


잘하고 싶어서였을까

리코더 부는 시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유년 시절의 나에게


잘 못해도 괜찮고

그저 좋은 마음이 넘쳐서

차마 그만 둘 수 없었던

몰입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서툴러도 즐거울 수 있고

삑사리를 계속 내더라도 웃으며

자신있게 숨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호기로운 마음


오늘의 내게

살포시 얹는다.


[ 아무튼, 리코더 ]

못하는데 어째서 이리도 즐거울까 / 황선우


리코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웃는다.

저마다 어린 시절

리코더를 불다가 냈던 삑사리를,

콧구멍으로 리코더에

바람을 불어넣던 친구를,

망쳐버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게 지나가버린

수행평가를 떠올린다.


어느새 이 악기 자체가 켜켜이

웃음을 담은 상징물이 되어,

특유의 소리만 들으면

뇌에 저장된 추억의 압축이 풀린다.

다양한 서투름을 목격했던

각자의 경험을 소환하면서.


음악으로 감동을 자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웃기기도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 아닌데

리코더는 그걸 자주 해낸다.

둘 중 뭐든 할 수 있다면

굉장한 능력이 아닌가.

- 38p


고음은 언제나 두렵다.

그리고 나는 매번 믿음으로 올라간다.

믿음의 도약은 그런 것이다.

할 수 없다는 나,

의심하는 자신과의 분열을 멈추고

단단하게 붙들어 맨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나를 내던진다.

삑사리의 어두운 골짜기를 들여다보는 대신

자신 있게 성큼 발을 내딛는다.

보이지 않는 음악의 길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모험은 그렇게 계속된다.

- 77p


‘라시도도 도시솔 도시솔 솔라미레도시 시라도’ 하는

피리 소리를 들으면

이 노래를 아는 모두가 각자 생각만 해도

강해지는 누군가를,

힘을 내어 지키고 싶은 소중한 무언가를,

언젠가 다시 만날 더 나은 세계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음악에는 이런 힘이 있다.

- 125p


영화 러브어페어 "I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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