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비스듬히 /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단춧구멍은 단추보다도 더 작지만
그 단추가 어떤 존재에 매달리게 하는,
또 단추로 무언가 연결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우리 존재의 빈 구멍 같은 거예요.
나와 너를 연결하는 몇 개의 구멍들이
언제나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연결되려고 애쓸 수 있어요. "
- 단추를 선물하는 사람 / 진은영 인터뷰 -
꼿꼿한 자세만으로는 볼 수 없고
몸을 기울여야만 볼 수 있는
세상과 사람의 틈
나를 기울여 다가가
그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나의 밖에 있지만 동시에 내 안에도 있는
그와 연결되고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는
경청의 자세를 생각한다.
곧음과 수직을 기꺼이 버리고
저마다 알맞은 생의 각도로 굽어져
나를 감싸며 부는 산들바람 같이
조용히 보이지 않게
받쳐주고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들
매일 서로 기대며 살고 있구나.
허락하신 일상을 정성껏 살아내어
상처를 빛나는 무늬로 만들고,
연약한 것을 보듬어 안고,
뿌리가 드러난 것을 북돋아 세워주며
누군가에게 가만히 다가서
기댈 언덕과 징검다리가 되어 받쳐주고
아름다우신 주님을 함께 바라보고 싶도록
나를 이끌어주는 소중한 바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했던
폴 발레리의 시처럼
맑게 살아가리라!
날마다 찾아오는
비밀 친구 같은 바람에
오늘도 희망 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