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떼기 어렵구나
1학년인 J는 모국어도 말할 줄만 알지 읽고 쓰지는 못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소통하기 더 힘들었다.
그저 옆에 앉아 스스로를 줄곧 의심하며
눈빛과 몸짓으로 J의 마음을 읽고(가능할까?)
잠시라도 안정시켜주려(말도 안돼!) 애쓸 뿐이었다.
다행히 남들하는 건 꼭 해야 하는
겁없고 적극적이고 해맑은 성격의 J는
아무 것도 몰라도 틀리고 엉뚱한 말을 하더라도
무조건 손들고 발표하며
때론 아이들과 부딪혀가며 생활 한국어를 배웠고
1학기가 끝날 때쯤엔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어로 말하기가 늘었지만
여름방학 한 달 동안 고향에 다녀오더니
입학할 때보다 학교에 더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던 10월의 어느날
J옆 짝꿍의 옆 책상에 앉은 반친구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
속으로 조용히 떠올리는 중이었는데
(뭐였더라? 서은이?OOO)
그 순간 곁에 있는 J가 내가 생각해내려는
친구의 이름을 조용히 말해준다.
유진이
소~름! 찌찌뽕!
묻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을 어찌 알았을꼬
내가 유진이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한다는 걸
생각하는 내 표정을 보고 읽었을까?
마음이 통한 것이 신기하고
J가 참 영특하다 싶으면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데
말을 못해 답답하고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
또래 친구들보다 어쩌면 더 눈치보고 노력하고
때론 혼나며 익혔을 J의 순간들이 상상되어
순간 울컥했다.
(J도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구나.
잘하고 있고 정말 대견하고
버티어주어 고맙다고)
동그랗고 예쁜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J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분명 상상도 못했던 일
올해는 여러모로
삼남매에게 꽂혀(?) 있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도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뾰족한 답도 없는 고민을 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수업 준비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몇 시간씩 자연스레 그리하고 있더라)
큰 금액은 아니지만 삼남매에게 줄
작은 간식과 문구류를 고르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누렸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설레었고
아이들 미소 한번에 힘을 얻었다.
(즉각적인 작은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는 나를 알았다는 것도 아프지만 큰 수확)
사전 어떠한 교육없이
바로 학교 정규 수업을 받으며
따라가야 하는 아이들 곁에서
안정감 있고 든든하게 있어주어야 했는데
하루에도 여러 번씩 흔들려서 미안했다.
아이들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여러 정책상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안타까워서 울었다.
나의 부족함에 벌벌 떨었고
순간순간 넘어졌으며
하늘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했다.
아이들을 위해 두 손 모으며
종종 꿈에서도 아이들을 만났고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자
부끄럽게도 아이들에게 집착해
서운함과 질투도 느꼈다.
(지나친 관심과 덕후 기질이 발동할까
본분을 잊고 아이없는 내가
혹시 사심을 채우려는 건 아닌지...
자주 날 들여다보며 단속했다)
효율적이었는지
결과로 평가하면 겁나고
몰두한만큼 소용이 있었는지
답하기 곤란하나
(예상대로 실패에 가까울지 모르나)
몸도 성치 않고 에너지도
경험도 지혜도 실력도 부족했지만
마음과 돈과 시간을 사용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진심이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었다고
아쉬워하는 나를 다독여본다.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을 함께해주어
정말 고마웠고 행복했어.)
예쁘고 소중한 아이들이
존엄하고 당당하게 성장하도록
아이들에게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분께
계속 두손 모음으로
내게 머물렀던 천사들과
마음으로 계속 연결되고 싶다.
빼놓을 수 없는 친구가 된
이른 아침 아이들을 기다리며 들었던 동요 연주곡 모음
이제 들으면 보고싶어 눈물 나겠지만 웃으며 기억하겠죠?
피아니스트 송근영님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