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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움 Apr 10. 2024

친구가 되어줄게

이름 불러주기

“그동안 마음을 너무 많이 쓰셨어요.

이젠 자신에게만 집중해보세요. “

 

원인모를 통증이 1년반 이상 계속되어 찾아간

자연치유연구소 원장님이 맥박을 짚으시더니

심장이 약해져 있다며 건네신 말씀이다.


지나치게 잘 참는다고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는데

강한 내면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는 칭찬 아닌 칭찬도 받았지만

(그래, 나 시험관 시술할 때마다 혼자 가서 국소마취 했었다구

보호자 없이는 수면마취 안된다 해서)

오랫동안 마음만 썼지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씁쓸했다.

 

마음 쓰이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마음을 글로 써내려갔다면 어땠을까?

남편은 이유없이 그냥 다 좋은데 나도 내가 그냥 좋을 수 있을까?

귀여우면 답없이 무조건 진다는 걸 알아버린 내가

나 스스로도 귀엽게 봐줄 수 있을까?

 

마음이 쓰이고 눈에 밟히는 것들을 글로 쓰며

내 안에 숨어있는 아이들과 놀아준다면 어쩌면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30대 중반이 되기 전까진 참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착하고 배려심 많고 씩씩하고 믿음 좋다는 말과 함께…

어떤 힘든 상황에도 너끈히 이겨낼 힘을 주실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그 기대에 맞추며 살아간다면…

남들이 모른다면 가끔 내가 지독하게 쓸쓸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숨어있던 감정들 중

결혼 후 난임을 겪으며 질투와 상실이 함께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조카들조차 보고 싶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

나는 당황하며 나쁘다 여겨지는 감정들을 누르기에 급급했다.  

 

공공장소에서 크게 우는 아이를 조용히 시키지 못해 쩔쩔매는 부모처럼 난감하고

상처 자국을 감추려고 긴 바지만 입고 다녔는데

갑자기 바지가 들추어져 상처를 들켜버린 것처럼 치욕스럽고  

정리되지 않은 냉장고 안을 시어머님이 열어보는 기분이라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외로움, 슬픔, 공포, 거절감, 버려진 느낌, 수치심,

서러움, 억울함, 무력감, 죄책감, 미움, 분노, 그리움

 

참다 참다 못해 나오는 재채기나 소리없이 새어나오는 방귀처럼

분위기 파악 못하고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나 여기 있어요!  큰 목소리로 자기의 존재감을 알릴 때마다

몹시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 힘들었던 건

감당하기 어려운 험한 것이 나올까봐  

깊은 원망을 듣게 될까봐

밤새 놀아달라고 귀찮게 할까봐

 

뿅망치로 두더쥐 때리듯이

그들을 모른척하고 잠재우며 조용히 시키기에 바빴다.

개봉금지, 촉수금지 팻말과 함께!

 

몇 년 전 뿅망치를 내려놓았더니

어르고 달래야만 슬며시 얼굴을 드러내던 아이들이

봉두남발 (아무렇게나 자란 쑥처럼 더부룩하고 헝클어진 머리처럼)

넌질넌질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이야기 들어달라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 중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온전한 슬픔도 온전한 기쁨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어쩌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이 되어

좀처럼 텐션이 올라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내 안의 모든 감정들을 존중하지 않고 따돌리고 소외시키니

기쁨, 사랑, 용기, 만족, 기대, 희망, 행복, 감사, 유머, 열정, 감동도

흔들리며 힘을 잃어버렸다.

(뜬금없이 나타나 남편앞에서 개다리 춤을 자연스레 추게 만들던

 사랑스러운 까불이들은 설 자리를 잃고 이내 숨어버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새로운 친구를 사귀듯 

내 안의 모든 감정들과 마주하며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자기 검열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며 달래 주고

때론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며 공감해주는 일

 

제 이름을 못 찾고 덩어리져 있는 감정들을 분리해

햇볕에 말리며 빨래 건조대에

빨래 올려 놓듯 널어두고

한 명씩 이름을 정성껏 불러주어야겠다.


그리고 다시 사랑의 바구니에 담아야지

그들의 존재에 고마워하며

한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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