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라는 가능성

책을 읽고 남기는 댓글#1

by 김숲

모르는 사람은 흥미롭고 두렵다. 그리고 변화를 불러온다.

(-월 버킹엄- 타인이라는 가능성 중에서)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타인을 만나는 것은 모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의 사회는 타인을 환대하는 세상인가?

”아니다 “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저자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할 때 집이 숨을 쉰다고 말한다.

많은 현대인이 이 말을 들으면 어이없는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쉴 거 같다.

물론 집들이 등 즐거운 초대의 사건들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집은 쉼의 공간으로, 그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오로지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거처럼 보인다. 현대사회의 집은 초대보다, 홀로 추구할 때 더 숨을 쉬는 거 같다.

1인을 위한 집이 늘어나고 활동마저 그러한 활동이 많아지는 것이 증거이지 않을까?


경쟁 구도의 사회에서 살며 웃으며 인사를 하지만, 결국 타인보다 빠르게 앞서가고, 차별돼야 살아남는다. 더불어 살아야 하고, 환대해야 한다고 여전히 말하지만, 주류는 타인을 경쟁의 구도에서 추방하는 모습인 거 같다. 이러한 주류의 흐름에 현대인은 지쳐있다, 번 아웃은 이미 감기처럼 유행하듯 찾아온다. 오죽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 는 대사가 유행했겠는가. 이미 과도한 피로감 덕에 우리는 많은 경우 타인을 굳이 궁금하지도, 초대하고 싶지도 않은 귀찮은 감정을 느낀다. 나도 예외는 아닌 거 같다.


그러면 우리는 타인을 어디로 초대하나?

지금의 우리는 가상의 사회 SNS로 초대하고 있다.

타인을 귀찮아하면서도 완전한 고립은 두렵기에 보이는 모습인 거 같다. 재미있는 것은 SNS는 타인을 초대하기도, 추방하기도 쉽다.

SNS의 수락과 거절이 그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우리는 가상의 연결로 타인을 환대하고, 환영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만남에 대한 피로도를 줄이면서 환대하고, 만나지는 일에 쓰이는 힘과 노력을 회피하기 위한 기능이자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용기 내 낯선 이를 믿어보는 것, 다가가는 것, 어쩌면 성서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무너진 성전의 말씀은 집을 허물어 타인을 환대하고자 하는 세상을 향한 도전이었을까?

어린 시절 새로 사귄 친구의 집 초인종을 그렇게 떨려하면서도 용기 있게 눌렀는데, 지금은 어쩌다 인스타 좋아요나 누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