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인문학 - 리베카 솔닛-

[책을 읽고 남기는 댓글#2]

by 김숲

공간, 걷기, 휠체어, 20분, 체감, 지금 나열한 단어들은 나의 걷기와 연관된 단어들이다. 산책하러 간다고 했을 때 최대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왕복 40분이다. 가는 시간 20분 돌아오는 시간 20분 걷기는 나에게 이미 제한되어 있고,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필요하지 않으나, 넓은 장소에 오랫동안 서있어야 하는 경우, 나는 휠체어가 필요하다. 걷기라는 단어는 적어도 나에게 바퀴와 신체의 두 다리를 모두 이용하는 의미를 포함한 단어이다.

두 발로 걷고 설 때 얻을 수 있는 공간 감각에 대한 경험은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의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발바닥이 땅에 닿아 느껴지는 감각들은 주체적으로 그 공간을 누리고 있고 공간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 땅을 더 밟을지, 밟고 있지 않을지, 아니면 앞으로 더 나아갈지 또는 뒤로 돌아갈지.

걷고 서는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움직임의 선택권이 스스로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의 경험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아쉬우며, 걷기의 행위는 실존의 의미를 자각하는 가장 원초적인 단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내가 직접 지면을 밟고 있다기보다는 바퀴가 땅을 밟고 있기에 내 신체에 전달되는 느낌은 아주 적은 것 같다. 평생을 휠체어를 의지해야 하는 죽마고우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공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느낄지 질문이 생긴다. 내가 밝고 서 있는 공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몹시 일반적인 경험 같지만, 어쩌면 대단히 큰 축복일 수 있겠다.

P26 또 우리는 두 발로 걸을 때 얻을 수 있는 공간 감각에 관해 이야기했다.라는 대사를 곱씹어 본다. 걸을 수 있기에 어딘가를 갈 수 있고, 새로운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 덕에 새로운 관계를 얻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은총을 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값의 치름 없이 주어진 은총이라면 나는 걷지 못하는 자들과 함께 걷기 위해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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