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ADHD의 슬픔

책을 읽고 남기는 댓글#3

by 김숲

나는 ADHD이고, 그건 사람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기능인이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노력을 하든 안 하든 나는 약간 떨어진다. 비난에 쉽게 노출된다. -91 P


"기능성" 평소에 많이 쓰는 단어이다. 심리학을 배우고 나서 세상과 사람을 기능성으로 많이 보게 됐다. 나와 타인을 볼 때 '발달을 잘하고 있는가?' 질문하면서 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일에 대한 기능성, 그리고 고도의 사회적 의사소통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갈 개인의 기능성이 있는지 평가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지능검사 같은 것들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기능성,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원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저자처럼 기능성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의 말처럼, 많은 경우 그들은 사회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면 마치 실패하고 낙오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노숙인을 보며 사람 구실을 못 한다고 말하고, 장애인을 보며 기대할 수 없고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며, 70이 된 노인에게는 여론조사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능성의 상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은 상실을 원하고 선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IMF로 사업이 망하고, 실직하고, 이혼했다. 그렇게 술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들고 거리를 침대 삼고 잠이 들었다. 조산이었다. 단지 출산 과정에서 사고로, 이제 빛을 본 아이의 지능은 70이 되었다. 태어나서 열심히 공부하고, 청년 때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고, 주름이 늘어났다. 어느 날 눈이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발언권을 잃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기능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인가?

아니면 나한테는 오지 않을 일인가?

아니면 나의 젊음은 아직 괜찮은가?


나는 내 가장 친한 벗에게 말했다. 나는 늙어가는 것을 기뻐하길 바라고, 그렇게 나의 몸과 정신의 불이 꺼져갈 때 반가워하길 바란다. 죽음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오는 날, 악수를 하길 바란다. 짧은 우리의 삶에서 기능성이 조금 없어도 즐거운 삶이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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