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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효진 Jul 23. 2024

2014년 9월의 기억

2017. 8. 23. 02:32



  뤽샹부르 정원엔 해가 지고 있었다. 혼자 뤽샹부르 정원에 앉아서 모국어로 된 시집을 읽었다. 친구는 다른 도시에 갔고 나는 내내 파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박형준의 시집. '나는 언제까지나 겸손한 무릎으로 지구를 찾아온 나무여야 하리라', '당신은 사는 것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내게는 그 바닥을 받쳐줄 사랑이 부족했다.' 같은 문장을 옮겨 적었다. 마망, 뷔떼! 어떤 아이가 소리치다가 울어버렸고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침을 가만히 들으며 엄마를 보채는 아이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태어난 도시가 없는 사람에게 지도를 주는 일. 검은 눈을 깜박이며 이제 태어난 날을 잊자고 하는 일. 이라고 노트에 적었다.

  아득한 강물은 푸르스름하게 넘실거렸고 누군가는 이곳의 센강이나 한강이나 똑같다고, 아니, 한강이 좀 더 낫다고 말했다. 한강을 오래 바라보고 있던 때도 있긴 했었다. 강물은 보고 있으면 뛰어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오래 강물을 보고 있으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반나절이 가도록 강변에 앉아 지나가는 유람선에 손을 흔들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일과였다. 해가 뜨면 초코잼을 잔뜩 바른 식빵을 먹고 긴팔이 무색한 날씨에 햇빛을 받으며 스시를 먹으러 갔다. 파리에서 스시를 먹으며 가게 주인에게 일본어로 서툴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맛있습니다, 하고. 디저트로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 후로 나는 여기에서도 스시를 먹고 나면 디저트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었다. 파리에서 가져온 습관. 희한한.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들어오는 동안 혼곤하게 잠들어 있는 나를 옆자리 남자가 깨웠다. 복도 쪽에 앉아 있는 내게 남자는 창문을 가리켰다. 유성우가 떨어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었지만 닿지 않자 창가에 앉아있던 또 다른 남자가 내 휴대폰을 받아 유성우가 떨어지는 광경을 찍어주었다. 그 기억이 파리에 머무는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고흐의 자화상에서는 광기가 느껴졌다. 감히 범접하거나 눈을 마주하기도 힘든 진짜 광기가. 구석에서부터 광기가 느껴져서 다가가보면 틀림없이 고흐의 그림이었다. 무엇이었을까. 아우라? 

  기억에 남는 것은 모네의 수련 연작이다. 미술관에 오래 앉아 있었다. 친구와 농담으로 한국에서 할 일이 없어지면 이곳으로 와서 미술관에 앉아 관람객에게 주의를 주는 노인들을 대신하자고 말했다. 저기서 자다 깨서 수련을 보면 더 좋을 것이라고. 혹은 자기만 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모네가 만든 정원에 가서는 아마 이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수많은 꽃들이 바람에 맞추어 몸을 눕혔다 세웠다를 반복했고 나는 종종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어버린 채 오래 우뚝 서있었다.

  피냐콜라다와 스윗 럴러바이. 1911년부터 파리에 있었다는 '뉴욕 바'에 앉았다. 스윗 럴러바이에서는 진한 화장품 맛이 났다. 내 입이 싸구려인지 향에 민감해서 더 향을 지독하게 느끼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센강에 앉아 마셨던 비락식혜 캔이 더 맛있었던 것 만큼은 확실하다.

  오를레앙에서 돌아갈 기차를 놓쳤던 때 나는 이상한 확신으로 기차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말 연착 중이던 마지막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갔다. 지금 와 생각하건대 그때 기차를 놓쳤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뭔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라고 적으려다 지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내 꿈에 나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땅에 있는 게 너무 외롭고 무서워서 갑작스레 도망치듯 떠나온 곳이 파리였다. 할머니는 낯선 땅에 와있는 내 꿈속으로 와서 내 손을 말없이 꽉 잡아주셨다. 할머니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꽉 잡아주셨던 손의 감촉만은 끝까지 남아있었다. 얼마나 멀리서부터 오신 걸까. 사실 그런 건 영혼에게 중요하지 않은 걸까. 영혼은 어디에 있는 걸까.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믿지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걸까. 수도원에 갔을 때는 신이 정말 있다, 가 아니라 있어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 웅장한 건물과 쏟아지는 햇빛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이 있어야만이.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마음이 존재하는 이상은 반드시, 신은 있어야만 한다고.

  생제르맹데프레 근처의 레 되 마고는 쇼콜라 쇼가 맛있다. 과일 타르트도. 처음으로 '라 디씨옹 씰부블레'를 하곤 뿌듯해했다. 계산서를 달라는 말을 해놓고 행복할 수 있다니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은 타국에서 나이와 이름과 얼굴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온전하게 다시 태어나보는 일.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낯설고 싶어서. 간단한 말을 더듬어 보고 싶어서.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없어 입을 다물어 보고 싶어서. 뜻 모르는 외침을 듣고 기분이 나빠 보고 싶어서. 몇 마디를 하게 되었을 때쯤 여행은 끝이 나고 낯선 언어는 또 다시 영영 어디엔가 묻혀서 꺼낼 수 없게 된다.   


  이 글을 쓴 지는 7년, 여행을 다녀온 지는 10년이 지났다.

어떤 여행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여기에 나온 이야기들로 희곡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희곡에 막을 찍을 때쯤엔 다시 그곳에 가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또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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