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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6. 2023

허허, 자궁내막이 있네...

선근증/ 자궁내막증 환자의 임신출산기


자궁내막증 

자궁 내막 세포가 생리 시에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자궁이 아닌 다른 부위의 조직에 부착하여 증식하는 것을 말한다.

복막 난소 나팔관 골반벽 요관 질 직장 대장 방광 횡격막 폐 등 자궁내막 세포가 도달해 침윤하고 유착을 일으키는 곳은 실로 다양하다.



내가 이 단어를 처음 들어본 날은 둘째를 낳던 날이었다.


27주에 왔던 조산기운이 34주 차에 또다시 찾아왔고,

나는 벌써 2주째 입원 중이었다.

그날도 원장님이 퇴근하시기 전에 병동의 산모들을 차례로 진료하셨다.

나는 그날 며칠 만에 초음파로 아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응, 위치랑 자세 괜찮고 잘 놀고 있네요. 계속 안정 잘 취하세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귤을 까먹고 있는데, 변의가 느껴졌다. 그때 마침 간호사가 들어왔다.

"다비님~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아까 응가를 무지 시원하게 잘 누었는데 지금 또 마려워서 이상해요."

"어머, 그래요? 그럼 불편하시겠지만 한번 볼까요?"

간호사가 내진을 하더니 얼굴빛이 파래졌다.

이번에도 손을 꺼내지 않은 채 콜을 넣으신다. 하아....

"지금 로다비 산모님 자궁문 다 열렸습니다! 수술실로 바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과장님께 콜 하고 빨리 준비해 주세요!! 보호자한테도 연락해요, 빨리!"


나의 아기는 결국 주수를 끝까지 채우지 못하고

자궁문이 다 열려버려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망할 놈의 선근증.. 내 새끼 왜 밀어내!! 아직 날이 다 안 됐다고!!

수술을 해서 아기를 빨리 꺼내줘야 하는 응급 상황이었다.


"선생님 잠깐만요!! 저 아기 진짜 빨리 잘 낳아요.

저 왜 수술해야 돼요? 저 잘할 수 있거요!"

"지금 잡히는 게 아기 발목이에요.

빨리 꺼내주지 않으면 자궁 경부로 아기 다리가 빠져서 정말 위험해져요"

헐.....

기껏 아래로 길 다 내놨더니 넌 왜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는 거니, 아가야?

응???

아까까진 분명히 옳은 방향으로 물구나무서서 잘 놀고 있었잖아? 응?


너무 당황스러웠고, 무서웠다. 수술이라니, 배를 째야 한다니!!

언니들한테 들었던 많은 무용담들이 머릿속에 속사포처럼 쉭쉭 지나갔다.

사람 배라는 게 한 겹 짜리 원피스 같은 게 아니야,

우아하게 한 번 칼 스윽 지나가면 아기가 뿅 나오는 게 아니라구.

뱃살 있지? 겉가죽. 그거 지나서 복막 지나서 자궁 지나서 양막 지나서

서너 번은 그어대야 아기가 나와. 그러고 나면 그거 다 다시 닫아야 돼~~ 블라블라


으아아아아 아!!! 나 어떡해!!


남편은 백 킬로로 40분 거리에 우리 집에서 첫째랑 있는 중이었다.

아까 저녁때 얼굴 보고 갔는데, 지금쯤 집에 들어갔으려나?

다시 언제 되돌아오지? 나 너무 무서워_


충격과 공포로 온몸이 떨렸다.

제왕절개 수술은 척추에 주사를 해서 마취를 하는데,

허리를 새우처럼 잔뜩 구부려야 척추뼈 사이가 벌어져서 주사를 넣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미 나는 2분 간격으로 진통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뒤뚱뒤뚱 수술대에 올라가 허리를 잔뜩 구푸리려고 하면

엄청난 똥이 나올 것 같아서 똥꼬가 다 터져나가고 나는 로켓처럼 앞으로 발사되어 버릴 것 같아서 "으아아아~~~~ 똥마려어어"하며 허리를 폈다가, 진통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새우등 포지션을 시도하는데 곧바로 다음 진통이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밀려왔다.

수 차례 시도 끝에 겨우 마취를 했다.

그리고 마치 예수님처럼 양팔 양다리를 차가운 수술대에 꽁꽁 묶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혀 생각도 못해 본 상황이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린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다비님 왜 그래요? 팔이 불편해요?"

내가 손목이 너무 꽉 묶여서 느슨하게 하려고 팔을 이리저리로 흔드는 줄 아셨나 보다.

"아니요 선생님. 저 너무 무서워요!!! 이거 제가 그러는 거 아니에요!

몸이 막 너무 떨려요."

"그럼 재워줄게요."

선생님의 이 말과 동시에 정말 필름이 잘린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떴을 땐, 내 아기라면서 얼굴 옆에 작은 포대기를 가까이했다가 가지고 갔는데, 수술대의 조명이 너무 눈부셔서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흐음.... 자궁내막이 있네...."

"네? 그게 뭔데요 선생님?"

"아, 자궁 안에 있는 세포가 자궁 밖에 조금 흩어져 있는 거예요"


그때 내 분만을 집도하셨던 선생님은 개복을 했기 때문에 초음파로 보이지 않던 병변을 눈으로 직접 보실 수 있었던 거다.

대수롭지 않은 거라는 듯한 선생님의 말투에 나는 안심했다.

후에 이 병으로 지금까지도 고생을 하게 되면서, 그때 그 선생님이 '이건 정말 여성의 삶을 매우 피폐하게 만드는 병이므로 꼭 치료를 받아야 된다'라고 말씀 한마디만 해주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의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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