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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6. 2023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아무것도 아니야

심부자궁내막증 수술 후기 (로봇수술)

첫 아이를 낳던 날의 강렬한 기억 후에도

남편의 똥수발은 계속되었다.


정말 미안해, 남편..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아무것도 아니야_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응.



모유가 그렇게나 넘쳐나고 계속 아이에게 밤낮없이 젖을 먹이는데도,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두 번 다 아기를 낳은 지 50일만 지나면 생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도 틀리지 않고 매 달 꼬박꼬박 생리를 했다.

그렇게 성실했던 생리와 함께 내 병증은 서서히 진행되었고, 나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천천히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35살이 되던 여름, 갑자기 말간 물 같은 것이 아래에서 계속 흘러나오면서 심한 복통이 밤낮 지속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때는 우리가 경남권으로 이사를 한 지 넉 달이 됐을 때였다.

지역에 관한 정보가 남편도 나도 전무했다.

관련 환우들이 모여있는 카페에 급히 가입하고, 정보를 찾고 또 찾았다.

여성전문병원 중에 잘하신다는 선생님께 진료를 보러 갔다.

예약 같은 거 할 새가 없었다. 냅다 현장박치기였다.

세 시간을 대기실 소파에서 죽어가다가,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됐다.

"심부자궁내막증이에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 왜 이제 왔어요?

병변이 너무 진행이 많이 됐어요. 이게 암은 아니지만

기수를 따지자면 4기예요, 4기."

"이 병은 버텨보다가 정 못 견딜 때 적출하는 병이라고 들었어요."

"최대한 빨리 날짜 잡고 수술해야 해요."

"저.. 3차 병원도 가보고 싶어요. 소견서 좀 부탁드려요."

"거 대학병원이라고 다 잘하는 거 아니에요."


원장님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아 여기서 할까 싶다가도

우리가 찾은 교수님도 실력자라고 들었기에, 여러 과가 있는 큰 병원, 이왕이면 로봇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다시 수일이 지나 교수님 진료가 있는 날.

"어... 심부자궁내막증, 선근증 이고요, 난소에도 양쪽 다 혹이 있어요.

최대한 빠른 날짜로 잡고 수술합시다."

그 병원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딱 보아하니 내 병이 꽤 깊은데, 대학병원이 더 잘하겠지. 혹여 무슨 일이 생겨도 대처가 잘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처음에는 2~3시간이라던 수술은 꼬박 5시간넘어서야 끝났고, 시댁친정 모두 모여있는 가족 채팅방은 난리가 나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남편 외에는 병원 건물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당최 소식은 없고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몇 시간을 뻗어있다 나온 줄도 모르는

나는 다만 온몸에 가득 찬  물놀이튜브 냄새에 구역질이 났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배에는 피주머니가 달려 있었고 소변줄도 달고 있었다.

목에 어마어마하게 굵은 바늘이 꽂혀 있어서 기절초풍을 하는 줄 알았다.

통증이 무척 심했다.





회복하는 기간은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

내 몸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모든 총량을 다 측량해야 했다.

들어가는 양은 링거와 혈액들의 총량으로 간호사가 계산했다.

문제는 나가는 양이었다.

"지하에 의료기기상 가셔서 소변대변 통을 사 오세요. 변기 위에 이 바가지를 놓고 소변이든 대변이든 누시는 거예요. 그리고 대/소변 각각 몇 ml 나왔는지, 보호자가 체크해서 여기 차트에 기록해 주세요."


들어간 양보다 나온 양이 조금이라도 적으면 이뇨제가 투여됐고,

식사 가능이라고 하셨는데 웬일인지 나는 밥을 딱 한 술 뜨면 목구멍이 탁 막히는 것 같아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내 전신에서는 항생제 냄새가 지독하게도 풍겼다.

대소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먹은 건 없이 약만 쏟아붓듯 들어가고 있으니, 구수한 냄새?가 날 리 만무했다.


수술 후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1인실로 옮겼는데,

병동건물이 ㄷ자로 되어있어서 저쪽 동에서 우리 방이 보였다.

나는 배가 너무나 빵빵하게 부어올라서 환자복 하의를 입지 못했다.

변의를 느끼고 남편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아주 천천히 내려오면,

남편이 "커튼 좀 치고, 잠깐만"했다.

"아아 나 너무 힘들어!! 걍 빨리 바가지 가져와. 볼 테면 보라지. 뭐 특별난 거 달린 것도 없는데."


이상하리만치 나는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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