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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6. 2023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더니_ 캠핑을 가고 싶었다

심부자궁내막증 수술 후기 (로봇수술)

자궁내막증 환자라면 알 것이다.

우리는 잘 참는다.


본래 통증에 무뎌서 이 지경이 되도록 끌고 온 걸까_

이 병을 갖고 살아가다 보니 통증에 버티는 깡만 는 걸까_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데 전공의 선생님이 오셨다.

"다비님, 패혈증이 왔어요. 그래서 요도에 관 끼워서 방광에 있던 소변 채취해야 되고, 대변검사랑 혈액검사도 다시 할 거예요. 균배양검사를 해야 하는데, 결과가 나오려면 4~5일 걸려요."

네? 패혈증이라구요?? 걸리면 며칠 안에 죽는 그거요?


참, 산 넘어 산이라더니.


"계속 항생제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별 일 없 거야 여보 걱정 마."

'어쩐지, 진짜 디지게 아프더라.'

'하 이런 바보가 있나. 패혈증이 오는데 몰랐어?'

'그거야 수술했으니까 아픈갑다, 한 거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갑자기 서로 공방을 펼쳐서 시끄러워가지고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어떡해? 죽는 거야?"

"안 죽어. 걱정 마.

내가 당신 계속 지켜줄께. 걱정하지 마."

'당신이 어떻게 지키니.'


혼자 있고 싶었다.

아니, 누구라도 붙잡고 나 좀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부모님의 시간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가 효도하고 싶을 때, 그때가 되면 이미 부모님은 같이 여행을 가기엔 너무 무릎이 아파 늙으셨을 수도, 맛있는 걸 소화시키기 힘드실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많이 했었다.


나의 시간도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것이, 소스라치리만큼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 죽으면 무엇이 제일 아쉬울까?'



갑자기 캠핑이 가고 싶어졌다.


남자아이들 둘을 키우면서 그동안 너무 지쳤었다.

이제 한놈은 학교도 갔으니, 엄마 없이 너희들끼리 한두 시간은 있을 수 있지?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러 다니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놓이니까 아이들 놔두고 요가, 탁구니 한다고 나갔던 시간들이 갑자기 아깝게 느껴졌다.


나는 깔끔한 걸 좋아한다.

밖에서 자야 할 때면 숙박이 제일 신경 쓰인다.

그러니 서른섯 평생 씻기도 불편하고 복닥대는 캠핑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깟 더러움쯤 무슨 대수라고.

내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그때는 꼭 자연 속에 나가서 밤하늘도 보고 흙냄새 맡고 싶다.'


오랜 적막을 깨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말이야 만약에 병원에서 나가게 되면 꼭 우리 가족끼리 캠핑을 가고 싶어. 그러니까 퇴원만 하면 바로 나갈 수 있게 준비 좀 해줘. 응?"

"... 그래 알겠어."


이후로 남편은 나 간병하랴, 캠핑장비 알아보랴,

사 나르랴 동분서주했다.

아이들 챙기러 우리 집에 와 계시던 엄마는 사위의 그런 모습에 속이 터진다고 하루는 낮 문병을 와서 얘기하셨다.

"엄마, 그거 내가 부탁한 거야."

"왜??!"


엄마 그건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캠핑을 가고 싶어 졌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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