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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6. 2023

네?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심부자궁내막증 수술 후기 (로봇수술)

일주일쯤 지나 나는 다시 다인실로 옮겼다.

나 빼고 전부 부인과 암 수술을 하신 분들이었다.

그분들 눈엔 우리가 신혼부부로 보였는가 보다.


네 밤 자면 올 거라던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코로나라서 친구랑 놀이터에 갈 수도 없고

학교도 전면 등교중지라서 첫째가 점점 말을 안 듣고 방황한다고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엄마가 없다고 엉망진창 하고 학교 숙제도 안 하고 그럴 거야?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야지! 어?"

전화를 끊고 얼마나 지났을까, 창가 쪽 어머님이 다가오시더니

"애기가 있어?" 하신다.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궁금하셨나 보다.

"네, 9살 6살 아들 둘 있어요."

"아이구 그랬구나, 잘했네 잘했어~

우린 새댁 네가 신혼부부 같은데 병이 있은 지 십 년 가까이 오래됐다고 하고 그러길래, 새댁이 처녀 적부텀 아팠는데 아저씨가 그냥 결혼해서 우리 둘이 알콩달콩허자~ 그러고 결혼한 줄 알었어어~

근데 아들을 둘이나 낳았어? 아이구, 잘했네 잘했어."


우리는 짠한 부부에서 기특한 부부로 바뀌었다.





벌써 수술한 지 2주가 접어드는데,

나는 매일마다 40도가 넘는 고열이 났고

열이 치솟을 때면 엑소시스트처럼 눈이 까무러지며 온몸에 경련이 났다.

간호사와 보호자가 붙들어도 몸이 날뛰는 것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혈관으로 들어가는데 마치 마시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고열전용해열제와, 또 그에 뒤따르는 해열제중독해소제가 콸콸 쏟아부어졌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꼴이었다.


로다비님은 패혈증이에요.
그런데 원인을 찾을 수가 없네요.



매일 아침마다 영상의학과에 내려가서 엑스레이와 씨티를 밥 먹듯 찍었다. mri도 수차례 찍었다.

소변 혈액 대변 모든 것을 뽑아갔음에도, 그들은 내 열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나는 끔찍한 두통 때문에 눈조차 뜰 수 없었고

배가 부풀어서 옷도 입을 수가 없었다.

입는 기저귀를 입고 담요로 가린 채, 매일 휠체어에 끌려 복부 사진을 찍으러 영상의학과 복도에 줄을 섰다.

옷을 못 입고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누구라도 제발 나를 이 끔찍한 에서 건져주길 바랐다.




마침내 수술한 지 14일째, 전공의 선생님이 달려와서 소식을 전했다.

"다비님! 드디어 찾았어요.

오늘 저녁에 다시 수술해야 된다고 교수님께 호출이 왔어요.

그러니까 금식하고 계세요."


나는 식사를 해도 됐지만 음식을 하나도 넘길 수가 없었다. 이미 굶은 지 꼬박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 병원에서 먹은 모든 음식을 합쳐봐야 간장종지만큼 밖에 안 되었다.

대체 왜 다시 수술을 해야 되는 거지? 천만 원짜리 로봇수술을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사무실에 나가있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다시 수술해야 된대. 엉엉

어떡해. 엉엉

죽을 만큼 힘든데, 아무도 설명도 안 해주고,

뭔가 잘못됐는데 아무도 나한테 사과도 안 해.

나 너무 힘들어. 엉엉

당신 언제 와?"


온 병실이 숙연해졌다.

원인을 찾았기에 답답함을 벗어 잠시 밝은 표정을 지었던 전공의 선생님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수쌤도 아무 말도 차마 못 하시고 다만 내 손을 꼭 잡아주실 뿐이었다.


내가 살자고 내 발로 걸어 들어와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건가 싶었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내 새끼들 보러 난 반드시 살아서 나가야만 했다.


나는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수쌤의 특별 에스코트를 받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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