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Sep 26. 2023

저도 욕해서 죄송해요 교수님 _마음이 담긴 한마디의 힘

심부자궁내막증 수술 후기 (로봇수술 후 재수술)

입원 20일째, 드디어 회복세가 시작되었다.


씨티 찍어야 해서 금식, 수술해야 해서 금식,

수술 후 가스 안 나와서 금식, 속이 메슥거리고 구역질이 끝없이 나서 금식, 장폐색이 있어서 금식, 이래서 금식 저래서 금식...


29박 30일을 입원해 있었는데 밥을 몇 끼 못 먹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모든 냄새가 다 맡아지고 그것 때문에 또 속이 더 메슥거리고 하더니, 그것도 열흘 이상 넘어가니까 무념무상이 되었다.


아, 음 식 이 구 나.



그렇게 생짜로 굶었는데 나는 오히려 무거워졌었다.


- 농축적혈구수혈 1,520ml

- 산소흡입 34리터

- 알부민 300ml

- 고열량수액 6,800ml

- 항생제(7종) 도합 102통

- 중증 간독성 해독제 19통

- 구역방지제(4종) 도합 80통

- 해열제(3종) 도합 41통

   그고열전용해열제만 35통

- 해열제중독해소제 24통

- 진통제 900ml


내 링거대는 4방향 모두 뭔가를 걸고 그 위에 또 걸고

아주 북적북적, 핵인싸가 따로 없었다.

워낙에 해만 떨어지면 열이 치솟았기 때문에

나는 안정세로 접어들고도 밤이 되면 두려움에 휩싸였다.

전공의는 내게 조심스럽게 수면제를 권했다.


다비님, 너무 힘들 때는
순한 걸로 잠깐 드시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약에 의지해서 잠에 들었다.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회복해 가던 어느 날,

달달달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병동 한 바퀴를 걷고 오는데

교수님이 내 병실 앞에 서 계시다 나를 보고 한걸음에 다가오셨다.


"로다비씨, 정말 고생 많았어요.

.. 미안해요."


그러고는 다시 바람같이 휭 사라지셨다.

?? ???


가 뭘 들은 거지?

교수님이 나한테 지금 사과를 하신 거야?

자리로 돌아와서 커튼을 누워 한참 생각을 했다.

그래,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그럴 수 있지

인정조차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내 병실 앞에서 기다리시고 직접 사과까지 하셨는데 영 나쁜 분은 아닐 거야.

수술 회복하면서 들숨 날숨에 욕했던 게 조금 죄송해졌다.





우리 엄마도 어릴 때부터 참 환란과 고난이 많았는데,

유난히 마취사고라든가 (수술 후 며칠 동안 깨어나질 않음)

외과적 문제라든가 (응급수술을 받았는데 잘못 꿰매어져서 장이 비뚤게 붙어버림)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보상은커녕 사과조차 받은 적이 없었고,

엄만 이제는 병원을 신뢰하지 않으신다.


사람을 고치는 게 뿐이 아니고 마음으로도 고친다는 걸 생각해 보게 된다.

병동에서 너무나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고, 위로받았고, 서로 의지했다.

전공의 선생님은 쉬는 날에 잠깐 들러서 내 배에 파이프 내놓은 자리 소독해 주셨고 (그날의 병동당직선생님이 있었지만, 본인이 나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으셔서 오셨단다)

산처럼 부풀었던 내 배가 염증이 가라앉으면서 연핑크색의 맑은 물이 약수처럼 한없이 쏟아져 시트와 바닥에 다 쏟아질 때 30분마다 와서 체크하고 거즈 갈아주시고 정말 헌신적으로 케어해 주셨다.


선생님의 작고도 야무졌던 손이 기억난다.

피로에 쩌들어서 초췌한 얼굴로 처치해 주시다가

순간적으로 핑 하셔서 옆에서 보조해주던 간호사쌤이랑 손을 붙잡고 베드를 짚는 바람에 장갑이랑 다 새로 바꾸어 끼고 하시기도 했다.

본인 몸이 그렇게 한계에 다다랐음에도 늘 다정하고 자상하셨던 병동의 J샘을 앞으로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독자님의 하트는 작가에게 행복입니다 :D
아래의 라이킷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이전 09화 그 해의 단풍놀이, 내 팔뚝에 새겼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