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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6. 2023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마음이 미쳐나갈 것 같을 땐, 난 귀뚜라미 소리 나는 파주를 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내성적인데도 어떨 땐 제정신 아닌 애 같아.


나는 학창 시절 연예인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애였다.

최신 유행가요 같은 것도 잘 몰랐다.

그래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갈 때가 가장 난감했다.

뭘 불러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어디서 귀에 꽂힌 음악 같은 건 어떻게 해서든 제목을 찾아내고야 말았고, 그 아티스트에 대해서 정주행을 해버리는 덕후기질이 있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눈에 띄는 배우가 있으면 포스터에서 이름을 찾아냈고

그 배우가 출연한 필모그래피를 쭉 훑었으며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 내의 모든 출연작을 봤다.

음악이던, 미술이던, 문학이던, 영화던, 내 관심의 장르는 다양했고

깊이 파다 보면 시간은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었다.

오드리 헵번에 꽂혔을 때는 흑백영화도 봤고, 후시녹음이 영화 몰입에 얼마나 어색함을 주는지 느끼며 195,60년대 영화를 봤다.

일단 '꽂히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중학생 때, <눈꽃>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뭐 그렇고 그런, 그 당시에 유행하던 흔한 플롯이었다.

불치병을 가진 여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

토요일마다 학교 끝나고 오면 티비에서 재방송이 나왔고,

나는 배우들이 예쁘고 잘생겨서 멍하니 드라마를 보곤 했다.

그런데! 아 그런데에!

그 드라마의 엔딩씬이나 배우들의 애절한 감정이 폭발할 때,

오도바이 시동 거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어떤 노래가 나왔다.

널 사랑해 눈을 감아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하늘이여 내 모든 걸 가져가

미련 없이 이 세상 떠나갈게 안녕

크- 가사와 드라마 내용 씽크로율 무엇


첫 번째 고막남친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눈꽃 드라마의 ost를 수색했고

오도바이 시동소리로 시작하는 그 노래의 제목을 찾아냈으며

그 곡을 부른 가수가 플라워라는,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밴드라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나의 오퐈들이 온다는 첩보를 알게 되었을 때, 나와 락을 사랑하던 내 친구는 심장이 뛰었다. 우리는 세 시간 전에 그 아케이드 상가 앞마당의 공연무대가 가장 잘 보일 만한 카페에 들어가서 터를 잡고 기다렸다.

노래가 두 곡 세 곡 진행되자 나는 초조해졌다.

이제 곧 오퐈들이 공연을 마치고 떠날텐데, 이깟 일회용 카메라로 찍은 사진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꺄 오빠 멋있어요~! 외치면서 먼발치에서 사진 찍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음악은 씨디플레이어로 들으면 차라리 더 생생했고 사진도 더 잘 나온 것들을 구하고자 하면 천지빼깔이니까.

나는 더 특별해지고 싶었다.

아케이드 건물 관리하시는 아저씨께 갔다.

아저씨, 오늘 플라워 차 몇 층에 주차되었나요?



그 때는 모두가 서로 돕고 살던 시절이었다.


관리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나는 우리 오퐈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던 층에서 친구와 오동동 발을 구르며 기다렸고, 이윽고 정말 우리 오퐈들이 오는 게 아닌가!

"오빠! 저 너무 팬이에요!"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막상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때 오빠가 고맙다고 했는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저 한번 안아주세요!


그래, 사인도 사진도 난 다 필요 없었다.

오빠와의 특별한 순간이 중요했고, 기억에 남는 애가 되고 싶었다.


꽂히면 회까닥 하는 덕후 기질의 첫 스토리를 쓰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터질 때 왜 파주를 가는지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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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미쳐나갈 것 같을 땐, 난 귀뚜라미 소리 나는 파주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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