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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7. 2023

SNS는 절대 서로이웃에게만

야멸차고 찌질했던 연애사

나는 사실, 브런치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는 둘째가 태어났을 때여서 정신이 없었다. 겨우 재운 아기 옆에 누워서 조용하고 공허하던 그 시간에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즐겁기도 했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마음속에 내 언젠가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옅은 꿈을 품은 채,

아기는 네 살이 되었고

나는 정말 정말 용기를 쥐어짜서 작가 신청을 했다.

서랍에 글 두 개와 블로그 링크를 걸어서 제출했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우면 나 좀 데려가아-

에라이, 난 그냥 남의 글에 하트나 눌러야 될랑갑다



한참이 지나 내가 블로그의 모든 글을 오직 서로이웃에게만 보이게 해 놨었다는 기억났다.

하, 나 참!

여기서 또 그 인간 얘기가 왜 나와?

내가 왜 철통보안이 됐게, 붕신같은 전남친 때문이지!





20대 초반에 잠깐 만났었던 그 사람은

겉모습과 다르게 매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별 생각이 없어서 말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어렸던 나는

'어머 저 오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며 망상 속의 그대와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한 번씩 웃을 때 보조개가 귀엽고 좋아 보였다.

하지만 만나 보니 집착이 심했다.

나를 만나면 내 손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자기가 가지고 간다.

그리고 문자목록 통화목록을 쭉 본다.

그때 폰은 수신/발신 메시지 저장이 따로 됐었는데,

그 모든 메시지들과 통화목록을 다 보고 나서야 폰을 돌려주었다.

나는 집에서도 그런 대접?을 못 받아봐서, 적잖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내 친구들 모임에도 따라가고 싶어 하고, 모든 걸 다 관여하고 싶어 했다.

너무 고민이 되어 친한 언니들과의 모임에서 남친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요 언니들, 제 남자친구가 이래요... 어떡하죠?"

"어머, 너무 좋은데 난? 자기한테 관심 가져주는 거잖아. 몇 시에 집에 가냐 누구랑 만나냐 어디서 뭐 먹냐 그런 거 물어봐 주는 거, 너무 좋지 않아?"

그... 그렇군요

저는 숨이 캉캉 막혀요 -_-

결국 그 연애는 그와의 기념일이 다가오는 것조차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어 얼마 가지 못하고 정리했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땐 문자메시지가 건당 요금을 받던 시절이었다

(꼴랑 40글자밖에 안 들어가면서!!)

그래서 우리들은 네이트온, msn 등으로 채팅하거나

싸이월드 방명록으로 약속을 잡곤 했다.

그런데 헤어지고 얼마가 지났을까,

그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잘 지내니?

친구들이랑 찜질방은 잘 다녀왔어?

보고 싶다..]

으으 이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내 스케줄을 알았지???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 공포감이 들었다.

그가 우리 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내 친구들의 접점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로 내 미니홈피의 방명록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하고

사진첩, 다이어리 등 모든 기능을 서로이웃에게만 공개하기로 바꾸었다.

아주 옛날에 친구들이 남긴 방명록들은 비공개로 바꾸는 기능이 없어서 추억을 지우는 게 속상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모두 삭제했다. 친구의 집을 타고 들어가서 또 내 사진이나 근황을 그가 보고, 알게 되는 게 싫었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그 이후에 사귄 남자친구들에게는 집을 엉뚱한 방향이라고 알려주었고, 남친들이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갈 때

혹시라도 내 뒤를 밟거나 하면 안 되니까 우리 집과 상관없는 엉뚱한 출구로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서 집에 들어가는 수고를 거뜬히 감내했다.

그럼에도 그는 악착같이 내 근황을 알아내서

나에게 연락을 하곤 했는데,

그의 호의로운 선물 소포를 뜯지도 않고 착불로 되돌려 보내고 나서야

그와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의 열정만큼 함께 회까닥으로 화답했더라면

우린 어쩌면 천생연분이 되었을까? 싶지만

나는 당최 그런 애가 아니다.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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