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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8. 2023

실물영접이 별거냐

일단 구독을 하란 말이에요

나는 엠비티아이에서 IJ지표가 유독 높다.

S와 N, T와 F는 비슷비슷하지만

검사를 몇 번을 해 봐도,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과는 오락가락하지 않고 항상 INTJ로 나온다.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생각하는 스나이퍼랄까.


오늘의 이야기는 첫 아이가 돌 무렵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아내 역할도 처음, 며느리 역할도 처음, 엄마 역할도 처음, 남편 때문에 감당해 내야 했던 지위에도 적응이 아직 안 된. 그야말로 답 없는 상태였다.

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면

참 좋지 않았을까 하고 이제야 생각해 본다.


하지만 J 성향이 폭발하는 내 인생 사전에,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매일매일이 저글링을 하며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다.


아줌마가 된 나는

우리 엄마도 옛날에 그랬듯이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침마당을 틀었다.

그날 아침도 밤샘 수유로 멍한 상태에서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아기를 안은 채 아침마당을 보고 있었다.


OOO건축사라는 분이 티비에 나오고 계셨다.

'우와.... 건축사라니... 안경테부터도 참 엣지있고 멋지시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강의를 듣다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좋은 건축주를 키워야 우리나라에 앞으로 좋은 건축물이 생길 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내 가슴을 묘하게 두드렸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덕후기질에 또다시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누구지 저 분은? 궁금하다!! 어디 사무실이지?


얼른 얼굴책을 펴고 건축사님의 성함을 검색했다.

아 역시, 있네 있어.


그런데 최신 글에 사무실 직원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와있었다.

당시 나는 전혀 일을 할 상태 아니었음에도,

정신을 차려 보니 건축사님의 사무실 스탭에 지원하고 싶다는 DM을 전송하고, 면접 일정을 잡은 뒤였다.


'어떡하지? 큰일 났다!!'


당장 남편한테 뭐라고 말할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내 힘듦의 모든 부분은 다 너라는 인간이랑 결혼한 것 때문이라는

어떤 Theory에 강하게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허락을 받는? 것도 싫었고

상의를 해서 내 선택이 변경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는 것도 싫었고,

이렇게 밤낮 애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살림하며 집에만 있는 것도 싫었고!

그냥 뭐

무논리와 프로락틴 호르몬만이 온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하루종일 고민을 하다가 저녁에 얘기를 꺼냈다.

"여보, 나 다음 주부터 월요일마다 파주에 일하러 가. 당신 쉬는 날이니까 애좀 봐. 아버님한테 가서 애 맡기면 반칙이야. 그럼 나 가만 안 있을 거야."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진짜 웃긴다.

이건 완전 억지 통보잖아.


시댁에 놀러 갔는데 아버님이 포대기를 너무나 잘 하시는 거에 깊은 인상을 받음과 동시에, 벨크로로 챡 한번 붙이면 되는 힙시트도 똑바로 못 메고 애를 거렁뱅이 넝마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남편의 모습이 빅매치되며 혼자 속으로 열받았던 것이 갑자기 지금 말끝에 묻어 진상스럽게 튀어나오다니!!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난 다 하잖아?

당신도 아빠니까 아빠 역할을 하란 말이야!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항상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전업주부가 된 것에 통탄해할 때면, "그럼 너도 다시 직장 나가면 되잖아."라고 속 터지는 말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그래? 일주일에 하루라도 이 혹 당신이 한번 온전히 달고 있어 봐라, 얼마나 심신이 피폐해지는지'하는 억하심정이 있었다.


남편은 의외로 뭐 하는 일이냐 대체 얼마를 받간이 겨우 돌 된 애를 놔두고 나간다는 거냐 묻지 않고 순순히 그러라고 했다. 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류는 DM으로 채팅 나누면서 이미 전공이랑 다 맞았기 때문에 바로 다음 월요일에 면접을 보았고, 그 뒤로 한동안 나는 월요일마다 남편에게 애를 맡기고 파주로 출근을 했다.


제도용 연필 깎는 잡무부터, 교구 정리 및 재고 파악, 새로운 교구 아이디어 내고 캐드도면 그리기, 곧 신설된다는 건축 과목 교과서 초안 작업 등을 했다.

매주 매주가 즐거웠고, 나 혼자서 조용히, 카시트에 애 찡찡대는 소리 없이, 트니트니 노래 없이, 정말 조용히 서울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가로질러 탁 트인 자유로를 달려 운전하는 그 시간들이 힐링이요 숨 트일 공간이 되어 주었다.

아마 거기서 내 꿈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했을지라도 나는 몹시 즐겁게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벌써 십 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려 보면 귓가에 가을 파주의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때 내게 그 몇 달의 시간이 없었다면~' 하고 가정조차 할 수 없다.

지금에서야

그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내보내준 남편에게 고맙다 말을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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