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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모 Sep 08. 2017

취향 갖기

반고흐와 하루키

고등학생 시절 난 서양 근대 미술에 푹 빠졌있었다. 유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서양미술사 책을 뒤적거렸다. (그땐 그런게 유행이었던것 같기도) 내가 맨날 서양미술사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곤 하니까 같은반 친구 하나가 신기해 하면서 나에게 화가 중에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난 선호도에 순서를 매기는걸 잘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 질문을 받고 약간 당황했지만 조금 생각하다 반 고흐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반응이 날 더 당황시켰다.


"에이 다 아는 사람 좋아하네”

1889년 Starry night - Van gogh


이런 반응은 약간의 혼란을 가져왔다. 유명한 화가를 좋아하면 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사라지는 것일까.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고 남들은 처음 들어봤을 법한 작가를 좋아해야만 어떤 취향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걸까. 같은 반 친구의 실망했다는 반응을 들었을 당시엔 내가 별로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뭔가를 좋아하는 일까지도 남들의 평가를 신경써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까지 미치고 나니 좀 짜증이 났다. 하지만 별 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무의식 중에 어떤 분야를 좋아하려면 남들은 모르는 사람을 최고로 쳐야 어떤 전문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지만 고등학생의 나는 취향이란 뭔지 누구를 좋아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딱히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좋은 취향의 조건


그런데 그때의 반 친구 같은 반응을 살면서 의외로 꽤 많이 접하게 되었다. 유명인을 좋아하는 것과 무취향은 같은 의미일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인디음악이나 rock을 좋아하는 편이 음악 좀 듣는다는 소릴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웃긴게 인디를 들어도 인디계에서 유명한 혁오밴드를 들으면 또 안된다. 아무도 모르는 가수를 발굴해 내서 들어야 하고 그런 밴드가 나중에 또 유명해 져야한다. 이래서 인디부심 같은게 생기는거다.

좋은 취향으로 인정받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이 난 좀 귀찮아졌다. 사실 취향을 가진다는거 자체가 꽤 시간도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은 반 고흐 작품을 보고 서양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그의 작품들만을 탐닉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관심을 보이다 또 다른 화풍에 까지 관심이 이어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어떤 지점에서 갑자기 멈춰서기도 한다. 그 멈춰서는 지점이 내가 결정하기만 한다면 난 그건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취향이란 말 조차도 평가가 포함된 말이다. 취향이란 그냥 취향으로 남으면 된다. 옳고 그른게 없다. 그래서 종종 반 고흐를 좋아한다고 할때 넌 미술을 좋아하는게 아니야 라던지 그림에는 별 관심없구나 라는 반응을 들으면 당황스러워 지는거다.





취향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 같다가도 누군가에게 내 취향에 대해 얘기 하려고 하면 돌연 공적인 영역으로 돌아서 버릴때가 있다. 하지만 취향이 평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그것만큼 숨막히는 일이 없다. 개인적인 감상마저 남들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면 그보다 피곤한 일이 있을까. 좋은 취향이란 그게 온전히 내꺼이기만 하면 된다. 남들에게 휘둘려서 나도, 나도 하는게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내가 만들어낸 취향. 그게 남들도 다 좋아하는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인기가 많은걸 감점 요인으로 생각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같은 일이다. 누가 뭐래도 나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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