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ekick Apr 07. 2016

작 문 예 찬

'끄적거림'을 시작하기에 앞서..

글을 쓰는 작업은,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니라 '잣대'다

(<기분이 좋아서 무엇이 나쁜가>, 데레크 하트필드)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



이건 정말 사실이다.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서 나는 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난 줄곧, 되도록이면 자주, 글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 작업은 글들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 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보기 위해서' 쪽의 의미가 순전히 더 강렬하다.

물론 사진들을 찍는 작업도 같은 맥락일 테다.


분명히 이기적인 발상이지만,

간혹 가다가 나의 '끄적거림'에 동감을 하는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마치 영혼의 고리가 연결되는 거 같으니, 이게 또 내가 작문을 좋아하는 이유라 하겠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얽혀있는 생각들을 글로 담아낼 때면, 콩국수를 뽑는 기계에다가 반죽을 왕창 넣고는 도르래를 돌리면서 얉디얉고 정갈하게 정돈된 국숫발을 뽑아내는 느낌이 든다.


큼직한 반죽덩어리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우리의 기억력은 -아쉽게도- 한정되어 있어서 그 밖의 장소에도 저장을 해 둘 필요가 있는 거다.

그게 한낱 국숫발일지라도..


흔히들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데, 난 그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

찬란하게 빛이 나는 기억의 조각들이 시간의 흐름에 점점 흐릿흐릿해져 가는 느낌이 들 때면 그게 그렇게도 서글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내게 어디까지나 매정하고 야속한 존재일 뿐이다.


안 좋은 기억일지라도 그 기억의 퍼즐 조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에 그것조차 소중한 거다.

하루키 말대로 결국 인간이란 건 기억을 연료로 살아가니까.


그래서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기억을 담아 글을 (퍼즐을) 끊임없이 써가는 거다 (맞추어 가는 거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예전에 써놓은 글/사진들을 훑어보노라면 '내가 이 때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이런 다짐을 한 적이 있었지'하며 나 자신을 꾸짖고, 타이르고, 격려하고, 칭찬한다.


아아, 이렇듯 난 정말 한 없이도 불완전한 존재인 거다.

하지만 어쩌겠나.

"m'aimer pour qui je suis"


Epil.

친구의 말에 의하면 사진에도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그 녀석의 사진들에선 외로움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의 내 글/사진에선 어떤 느낌이 풍겨지고 있을까.


2009.08.2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