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ekick May 16. 2016

미국/영국인들의 불운 쫓는 법

I wish you Good luck!

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 동료가 "그러고 보니 난 한 번도 뼈가 부러진 적이 없어"라고 랜덤한 말을 하더니 "헐, 말이 씨가 될라"하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마침 옆에 있던 문을 손바닥으로 만졌다.


뭥미? 싶어서 뭐하냐고 물어보니, "I'm trying to touch the wood. 나무를 만지려는 거야."라고 한다.


그제야, 아하. 싶어서,

"아, 영국서는 나무를 '만진다'고 하는구나? 미국서는 '노크' 한다고 하는데"라고 말하며 두 나라의 또 다른 문화를 재밌어했다.


이러한 영국의 'touch the wood'나 미국의 'knock on the wood'는 보통 본인의 행운에 대해서는 얘기하고는 그 운이 끊기지 않기를 바랄 때 하는 일종의 바디랭귀지이다.  한국선 '말이 씨가 될라'라고만 말하고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미국/영국에서는 나무로 된 어느 물건을 찾아서 만진다/노크한다. 

위의 경우에선 뼈가 안 부러졌다는 걸 자랑하다가 혹시나 말이 씨가 될까 봐 나무로 된 문을 만진 것.


처음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학교에서 애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는 주먹을 쥐고 책상을 똑똑. 하고 노크하는걸 보고, 

'아하, 무슨 문화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불길할 거 같으면 뭔가를 두드리는구나.'

라고 대충 감만 잡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친구랑 차를 타고 가며 얘기를 하다가 차 사고 같은 얘기가 나와서 나는 운전대 옆의 평평한 부분을 똑똑. 하고 노크했는데, 친구가 그걸 보고는,


"어이, 그건 나무가 아니좌놔"

라고 해서 엄청 쪽팔렸지만 덕분에 나무를 두드려야 한다는 걸 배웠다. (하긴 영어가 짧았던 시절에 쪽팔렸던 이야기들을 수두룩하다)


이 나무를 만지거나 노크하는 바디랭귀지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고대에 나무의 정령들을 믿었던 시절에서 비롯되어서 자신의 행운에 대해 얘기를 들은 정령들이 질투하지 않기 위해서 나무를 두드리거나 만지면서 못 듣게 하는 거란다.


아일랜드의 대표적 정령 leprechaun을 위해서 한다는 얘기도 있는가 하면,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가 나무여서 유래된 것이라는 얘기들도 있다고 하니, 유래가 명확치 않은 일종의 미신이 일상에 이렇게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게 참 흥미롭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지 않거나 밥숟가락을 밥에 꽂아놓는걸 피하는 식의 미신 비슷한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외국 친구들에게 말해줬을 땐 신기해했다. 


미신적인 제스처 얘기가 나온 김에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몇 개 들자면:

- 미국서 학교 다닐 때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등굣길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시교육청에선 휴교하거나 늦게 등교하곤 했다. 때문에 겨울철 저녁 하늘이 꾸물꾸물거리며 눈이 올랑 말랑 하면 눈이 꼭 오길 바라면서 일기예보를 수십 번 체크했다. (아침에 일어나 눈 비비며 바로 티비를 켜고는 뉴스 채널 밑에 XXX High School - CLOSED라고 뜬 자막을 보게 되면 정말이지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러니 학생/선생님 할 것 없이 눈을 기다리는 건 매한가지였고, 초등학교 선생님인 와이프가 알려준 '눈 오는 비법'도 있을 정도였다.  이 비법인즉, 자기 전에 얼음 한주먹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고, 파자마를 뒤집어 입고 자면 다음날 눈이 온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신이었다. (한창 연애시절 때는 거꾸로 입은 파자마를 인증샷으로 찍어 와이프에게 보내주곤 했다)  그런 "의식(?)"들을 거치고 난 후에 정말로 다음날 눈이 많이 와서 학교가 닫은 적도 있었으니, 그 겨울에는 한동안 계속 파자마를 뒤집어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또 다른 제스처는 미신이라기보단 일종의 게임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친구들 여럿이서 있다가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물을 떠 온다던가, 설거지를 한다던가, 뭔가를 사 온다던가) 갑자기 일제히 검지 손가락을 코끝에 댔다.  그중에 제일 늦게 코를 만진 친구가 벌칙마냥 그 일을 해야 되는 거였는데, 미국 생활 초반에 이게 뭔지 몰랐을 때는 억울하게 많이 걸리곤 했다.  찾아봐도 출처를 알 수 없는 게임이긴 하지만 (Nose goes라는 정식 명칭이 있긴 하다) 가위바위보/묵지빠/엎어라 뒤집어라로 벌칙 희생양을 정하던 어렸을 적 생각이 많이 나곤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네 세상은 더더욱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우리는 사소하면서도 다소 비이성적인 제스처들로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이를 들어가며 이런 미신들을 더 믿게 되지 않는 것 같으니, 우리 마음에도 세상사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굳은살이 배기는 거일지라.


이성적이든 아니든, 그래도 이런 제스처들로 잠시나마 우리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거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


그나저나, 나도 그러고 보면 뼈가 부러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똑똑.


매거진의 이전글 자동차로 아일랜드 한바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