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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형 모험가 Aug 31. 2023

사회복지사 퇴사일기

공부를 끝내고 입사한 곳에서 육아휴직 대체직으로 1년 3개월을 일하다 계약만료가 되어 회사를 나온지 정확히 4개월이 지났다. "퇴사하면 뭐할꺼야?"라는 질문에는 비행기를 끊어놓았었기 때문에 "제주도에 다녀온다."라는 말로 답이 되었지만 그 이후로는 어떤 시간을 보낼지 상상하던 것도 없고 준비나 계획도 없었으며 다시 사회복지사를 할지에 대한 100% 확신도 부족했다. 


나름 의미있고 알차게 보낸 4개월, 무얼했고 어쩌다 다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확신을 가지게 됐을까?



- 봉사했다.

처음 봰 이용자와 30분 넘게 대화를 나눠야했던 봉사였고 너무 감사하다며 다음번에 또 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실 때, 퇴사하고 오랜만에 충만한 기분을 느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했을 때, 이거지 싶었다. 


- 걸었다. 

여유의 중요성을 느꼈고 목표가 생겼다. 마음과 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같이 움직인다는 말? 정답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걷다보면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쉬던 운동이 하고 싶어지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 대단한 걸 내가 해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조심성이 많은 홈프로텍터 언니를 도봉산 정상에 데려간 이후부터 언니가 자신을 칭찬하고 싶은 일에 도봉산 등반을 넣은 것은 내가 그 누구에게나 운동을 추천하는 좋은 사례 중 하나이다. 


- 사람을 만났다.

n년째 내 취미. 누군가 취미가 무어냐 물어보면 사람 만나기라 했었는데 일하는 동안 바빠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잊고 살았다. 동창, 동기, 동료를 만나 근황을 나눌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의 확장을 했다. 유료 독서모임에 참여했고, 거주지 주변 인프라를 활용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일하며 감사했던 대학생 봉사자도 만났다. 

한번은 8명이 모이는 독서모임에 갔다. 서로 다른 직업군에서 겪은 경험담을 듣고 나니 8명의 에세이를 동시에 읽고 나온 느낌이었다. 주체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대화안에서 배움이 있는 게 좋았다.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점! 오랫동안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려면 내 안에서 싹을 틔우려하는 '만'을 경계해야한다. 자만, 만만, 교만.


- 독서처방전을 받다.

나에게 책읽는사람 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읽기 시작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짧은 사이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게 독서라는 건 아마 읽는 사람들은 다 공감할 것 같다.

사람들은 어떻게 꾸준히 읽고, 아침 일찍 읽는지 신기해할 뿐이지만, 책을 가지고 다니거나 많이 읽는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전혀 모르던 개념을 습득하고, 새로운 시선과 관점으로 보게 되고, 나를 알게 되는 것이 독서로 얻는 것들이다. 퇴사하고 왜 해외여행을 가지 않느냐고 물어오곤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건 그 쪽이 아니다. 책만 종일 읽어도 모자라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탐색했고 일에 대한 가치관을 배웠다. 실험하고 싶어졌고 일할 날이 기다려졌다. 


- 글을 썼다.

(내 기준에) 정리가 됐거나 기승전결이 있는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때문에 여기에는 자주 올라오지 않지만, 펜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지금은 생각이 떠올라서 글을 쓰고 있지만, 언젠가 글 쓰는 습관이 잡혀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소설을 짤막하게 배우고 단편소설을 써보느라 애먹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요리했다.

내가 주방에만 서면 냄비뚜껑에서 나사가 빠지고, 필요 이상으로 큰 소리가 났다. 전분 없이도 죽같은 요리가, 튀김가루 없이도 눌러붙는 요리가 나왔다. 그냥 주방에 서지말라는 계시를 자주 받았지만 책에서 내가 가장 고치고 싶은 약점을 하나 발견하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며 극복해보자는 말에 요리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넓디 넓은 세계관에 손가락 한개 정도 걸쳐놨지만 계속 노력해 보고 싶다. 몇 개월 전만 해도 가족들은 내가 주방에 서면 기대하지 않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불안해했다. 이제는 가족들이 떨지 않는 것만 해도 성공적이다.  



''왜 ~이런건 안해?" 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난 밤 11시라도 내가 하고 싶은게 생기면 마음먹고 몇시간 뒤에 눈뜨자마자 경험하는 추진력을 뽐내지만 끌리지 않는건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잘 추진하지 않는다. 

그게 나에겐 해외여행이고, 영어공부였다. 누구에게나 당연히 좋고 반드시 해야되는 건 없다. 

나를 위해서 잘 차려먹고 책을 읽으며 때로는 걷는 시간을 보내도 성장하고 바뀌고 경험할 수 있었다. 


올해 여름이 다 가기전에 시골살이도 계획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풍요롭게 사유하고 있을 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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