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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pr 30. 2020

내일 태양이 뜰지는 아무도 모른다

♪ゲスの極み乙女- 人生の針

나, 틀리는 것으로 밖에는
인생의 바늘을 바로 사용할 수 없어
-
베인 자리가 예상보다 커져버렸어
변화를 좋아한 건 아냐
이상을 선택한 건 아냐



ゲスの極み乙女(저열함의 극치인 여자) - 인생의 바늘



내 마음이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흐른다.

어디서부터 이 놈의 마음이 잘못되었나를 짚어보자면 불과 어제일 수도 있고, 한 달 전? 혹은 반년 전? 혹은 1년? 2년? 훨씬 이전으로 시간을 감아 태어났을 때?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어딘가 어긋난 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벌써 사월도 끝자락이다. 거짓말이지?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혼자 호텔에 갈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튼을 닫는 일부터 한다. 남산이 훤히 보여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뷰라는 호텔 종업원의 추천을 받은 직후라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잠깐이나마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안 보는 것도 내 휴식의 일부다. 그저 술을 마시다 졸음이 몰려올 즈음이 밤이고, 찌뿌둥하게 깨어나는 것이 아침이다. 혹시나 몰라 체크 아웃 한 시간 전 즈음에 느지막한 모닝콜을 걸어놓긴 하지만, 딱히 전화벨 소리로 깬 적은 없는 것 같다. 싫지만 몸이 바깥의 시간을 기억하는 탓이다.






이런 시간은 꽤 자주 가졌음에도 평소와는 다른 기분과 시간이었다. 다른 때보다 기분이 좋지 않은 채 방문한 것이 더 큰 이유겠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꽤 부지런한 게 글도 쓰고, 밀렸던 개인 일을 보거나 호텔의 여러 가지 시설들을 즐기며 있어빌리티 한 비즈니스맨 흉내를 냈을 텐데, 이번에는 억지로라도 머리에 여유를 주기 위해 애썼다. 이미 한 번 완주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머리에 구겨 넣는 일을 하다 보니 미리 준비했던 술도 어느새 다 마셔버렸다. 그때서야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두 시였다. 이제야 밤이 찾아왔다.







불을 끄고,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시간의 밤을 맞이했다. 평소 같이 보냈더라면 이 즈음엔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 위에서만 있었으니 무언가 손해 본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침대가 최근 몸을 뉘었던 것 중에선 가장 푹신했던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일까. 그래도 사뭇 아쉬운 기분이 들어 뜬금없이 일어나 욕조에 물을 받고 잠깐 몸을 뉘었다.

 

물에 들어가서 멍하니 생각하니 새벽 무엇 때문에 두시가 넘어 이렇게까지 시간에 무언가를 아등바등 채우려고 이러고 있나 싶었다. 그 생각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애써 피했던 생각들이 몰려 들어왔다. 이렇게 시간을 채워봐야 물거품 같은 것이 또 시간이요 삶인데, 이런 비싼 호텔에 쉬러 와서까지 이렇게 사나 싶어 바로 물기를 털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읽어봤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읽어보았지만, 읽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어찌 되었든 사람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몇 년 뒤의 어떤 삶을 위해서 오늘의 나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이건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다. 꽤 열심히 살았다.  


처음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글쟁이로 살아가던 시절에는 머리 희끗한 나이가 되어 나만의 서재에서 안정적으로 글을 쓰는 나를 상상하며 열심히도 썼더랬다. 지금에서야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의 일도 비슷한 생각으로 해왔던 것 같다. 가뜩이나 수명도 짧다는 업계라 지금 이렇게 살지 않으면 마흔몇 살 즈음의 내가 불행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살아도 마흔이 넘은, 아직 만나지 못한 '나'는 불안했다. 그런 삶을 살아왔다 보니 짧은 여행에도 엑셀에 촘촘하게 시간 단위로 장소와 돈을 적으며 계획하는 게 바로 나다. 그건 지금에야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뒀지만, 아직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은 계획대로 살아가고 있다. 촘촘하게 아낌없이 살아야 나은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며.






아마 영화/문학사 전체를 통튼 명대사 중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대사는 TOP 100위 안에는 들어갈 것 같다. 개인의 문화 소양이 짧은 탓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책 끄트머리 즈음에 있는 이 대사를 읽었을 땐 어린 마음에도 꽤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에 와서야 생각해보면 웃음밖에 안 나는 이야기다. 내일도, 내일의 태양도 모르는 것이 삶인데. 아마 저 대사의 뒤에 스칼렛은 불의 사고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것을 위해 우리는 오늘의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하기 위해 불행하다니. 얼마나 모순적인지.







그 생각을 마무리할 즈음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즈음이었다. 살아가는 시간은 분명 아침을 향하고 있었는데, 어제 쳐놓았던 커튼 탓에 여전히 방은 캄캄한 채 침대 아래 취침등만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봐라. 내가 사는 곳에는 태양이 뜨지 않았잖아. 라며 다시 눈을 감았다. 행복하지 않아도 좋아. 좋지 않아도 좋아. 그저 오늘은 괜찮을 하루를, 적어도 아프지는 않을 하루를 보낼 거라는, 보냈음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지금 이 이야기를 쓰는 나는 여전히 어긋난 무언가에 불안하지만, 그렇게 여전히 어딘가 어긋난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고 즐겼던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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