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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pr 25. 2020

바닥에 등을 기댄 채

♪Broken People - Almost monday

어떤 것들은 가지기 힘들어
어떤 밤들은 후회하곤 하지
하지만 이 것들을 치우고 있어.
-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망가져버린 사람들이야.


♪Broken People - Almost monday


구약 성경의 욥기에는 사탄이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상황들을 욥에게 주며 그의 신앙을 시험했지만 그는 결국 이겨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의 신앙도 없고, 애초에 그 정도의 시험도 아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닥을 친다'는 기분이 들 때 즈음이면, 어림도 없다면서 바닥이 꺼지는 경험들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그 보이지 않는, 느껴질 리 없는 무언가에서 딱딱함을 느꼈다. 바닥이다. 어린 시절 몇 번 정도 느꼈던 그런 감정이다.

 






처음으로 이 '바닥'이라는 것을 느낀 10대에는 숨도 쉬기 어려워져 건물 옥상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냥 그곳에서 한 번에 바닥으로 내려앉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만 같았던 기분이었다. 살면서 가장 강했던 기억 덕분인지 아직까진 그런 기분이 들진 않지만, 그 이후로 이 바닥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적인 사건이나 좌절을 통해 마음의 바닥을 겪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마치 번지점프에서 뛰어드는 순간과 같은 개념이다. 사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은 그저 충격이지 바닥으로 떨어진 아픔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보통 마음의 바닥이 느껴지는 순간은 그 충격으로부터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충격에서부터 바닥에 닿을 때까지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를 뜻하기도 한다. 번지점프는 결국은 위로 튀어 오르지만, 떨어지는 마음에는 보통 그런 재미와 안전을 보장하는 줄 따위는 없다. 그래서 더 충격이고, 이내 아픈 것이다.






우선은 무기력하다- 

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다시 올라가기 위해 수도 없이 손을 뻗고, 도와달라 외치기도 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이 곳에 적힌 과거의 어떤 글에도 적혀 있듯 애써 밝게 보내기 위한 그런 혼자만의 노력도 있고. 그런 노력의 끝에 당도한 것이 이 바닥이니 더 이상 애쓸 힘도 없고, 생각도 없다. 


그런 내 마음 주변에는 그 간 노력했던 것들이 함께 떨어져 흩뿌려져 있다. 과거에 떨어질 때 떨군 것들도 드문 드문 보인다. 후회나 아쉬움이나 잘못된 선택이나 그런 것들이다. 그렇게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가 한 많은 것들이 소용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이내 위를 쳐다보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 






다소 차분해진다- 

어찌 되었든 무언가 불편한 느낌은 들지만 등을 댄 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여전히 마음 바깥 현실의 누군가는 나를 때리고, 괴롭히겠지만 오히려 이전보다는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보통 아픔은 상실에서 온다. 마음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어진다. 


반대로 얻을 힘도, 얻을 것도 없으니 꽤 관대해진다. 아무래도 괜찮을 삶이 이어진다. 이 때는 조금 스스로도 정신을 놓고 살 때가 많았고 스스로가 했던 일종의 '일탈'도 대부분 이때 이루어졌다. 잘못되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때는 일탈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조금씩 정리를 시작한다- 

차분해지면 처음에는 그렇게 보기도 힘들던 과거의, 지금의 여러 가지 필요 없던 감정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에 대한 간절함이라던가, 시도에 대한 실망감이라던가,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들에 쏟던 애정이라던가, 과거에 있던 너저분한 기억이라던가, 추억 같은 것들이다. 사람의 기억이 기계처럼 보기 좋게 지워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모래무덤'이라고 하는, 언제고 다시 튀어나올 그런 것들을 가리려고 애쓴다. 


애써서 바라지 말아야지, 실망 같은 것을 할 일을 하지 말아야지, 애초에 정을 주지 말아야지. 이렇게 다짐하며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곳에 힘을 쏟는다. 어린 시절, 처음 이런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게임에 푹 빠져서 나름 랭커까지 올라갔었다. 삶에 어떤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꽤 집중한 결과다. 지금도 무언가에 빠질 거리를 찾고, 조금씩 해보고 있다.






그러니까 이미 바닥에 붙어 일어날 생각이 없는 기분이지만, 적혀 있는 대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자면 꽤나 담담하고, 담대하다. 친절하기도 하고, 일견 자비로운 기분도 든다. 생각이나 판단이 꽤나 명확해지고, 어디로 향하는지, 향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꽤 열정적이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위기 속에서 사람은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괜찮지 않고 또, 괜찮다. 


이렇게 적어놓은 것은  또 혹시나 지금의 이 기분을 잊고 마음이 나아지기 위해 애쓸까 봐 쓰는 이야기다.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지 말라는 경고문 같은 것이다. 그곳에, 그것에, 그 사람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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