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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03. 2019

1평 남짓한 휴일 이야기

♪한희정 - 휴가가 필요해

맞아 나 중요한 그 무언가를 잃어버렸지






오후 여섯 시 정도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오늘따라 느끼지 못한 건지, 아니면 귀찮음이 이긴 건지 모르겠지만. 소중한 주말 중 하루를 이렇게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소비했다. 물론 지금도 침대 위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요즘은 이렇게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이런 시간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서 오늘 같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처음 주 5일제인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매 주말이면, "이번 주엔 어디서 뭐하지?"라는 생각으로 들떠있었다. 대학을 마칠 즈음부터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으니, 아이러니 하지만 프리랜서 겸 학생 신분을 벗어나고서부터 나에게는 주말이 생겼다. 내가 하고픈 걸 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처음에는 주말에 쉰다라는 것이 어색하기도 해서 일부러 회사를 나가기도 했다. 일할 것이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허한 기분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노는 게 어색할 때도 있었다. 


정해진 시간과 업무대로 일해야 하는 평일을 보내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틀은 많은 직장인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일 테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서 혼자서든, 함께이든지 무엇이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책 한 권을 읽어도 집보다는 집 앞의 카페에서 읽고, 혼술일지언정 한 잔 정도는 마시려고 저녁에는 밖으로 나갔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하나둘씩 결혼을 하는 지인들이 주변에 늘어갔고, 당장에 회사에서도 나와 같은 직급이나 비슷한 연차의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이 생겼고, 육아를 하는 동료들이다. 자연스럽게 주말이 되면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생각보다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터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 저는 주말에 가족이랑 어디 가요. " 

" 어, 나도 어디 가야겠다. " 


예컨대, 이런 것이다.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는 표어처럼, 다들 주말이면 어딘가를 가거나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디지털 마케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평일과 주말의 트래픽을 분석해보아도 주말에는 디지털에도 사람이 한가하다(?) 클라이언트 분께 "주말에는 다른 여가를 즐기는 편이라 평일에 비해 트래픽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 고 해도 수긍이 되는 분위기니, 그만큼 다들 휴일을 알뜰히 쓰는 것 같다. 


평일 동안 무어라도 했는데, 

주말에는 무엇도 안 하면 안 될까. 

여기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 안에서 TV를 보거나 오랜만에 가족과 대화도 하고, 밀렸던 게임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 것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거리가 쌓인다. TV를 보다 직업병처럼 "에이 저거 광고네- PPL이야" 따위의 생각을 하다 미뤄뒀던 일 생각을 한다던가, 가족과의 대화에서 갑자기 결혼 같은 미래 이야기가 나오거나 하면 쉬고 있는데도 가슴 한 켠이 살짝 답답해졌다. 


답답한 만큼 행동도 집에서 방으로 줄어들었다. 처음엔 외롭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하고, 시간이 아깝기도 해서 몸이 들썩거리고는 했는데, 어느 주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정말 정말. 그다음 맞이한 토요일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저녁이 되어서야 그 시간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정말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쉰 그다음 주는 퍽 개운했다. 


이제는 익숙한 천장이다.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방풍 뽁뽁이가 붙은 세상 쾌적한 0.5평 즈음의 공간.


"밖에 나갔으면 소나기 맞을 뻔했어 그쵸."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가족과 천둥번개가 치는 바깥을 보았다. 침대 밖은 위험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나의 휴일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마저 벗어나니, 정말 휴가가 따로 없구나 싶은 날들의 연속이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풍족한 기분이다. 시간은 금이라지 않나. 금을 정말 펑펑 쓴 셈이다. 오늘도 그런 기분으로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만족스러운 걸 보니 '이번 한 주도 열심히 살았나 보구먼'이라 확인받는 듯한 기분의 날이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니, 

무엇도 하지 않고 

쉴 용기도 가끔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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