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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02. 2019

데이터 7.2기가만큼의 외로움

♪윤상 - Back to the Real Life


널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기 없는데




♪윤상 - Back to the Real Life



얼마 전, 데이터 요금제를 바꿨다. 

100기가를 기본으로 주는 요금제였는데 처음엔 이 만큼이나 필요할까 싶었지만, 여유 있게 쓰는 게 좋겠다 싶었다. 30일로 나눠도 하루에 3기가.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달이 바뀐 첫날 데이터 사용 경고 알람이 떴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7기가를 썼다는. 보고 있던 영상을 끄고 음악을 들으며 조금 반성했다. 


한 유튜브 예능에서는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세우고, 귀에는 이어폰을, 입으로는 회를 먹는 혼밥남을 보는 패널들이 "우와, 대단하시다~"며 리액션을 하고 있었고 옆에는 그 혼밥남이 으쓱이고 있었다. 혼자 그 영상을 보면서 눈 앞의 간장에 회를 찍었다. 나는 아무도 대단하다고 안 해주는데- 쳇. 어떤 세상이지 저긴. 예전에 썼던 일기에,


 '세상이 사각틀 속에 갇힌 것 같다.' 

고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쓴 이후로 여전히 내 세상은 그 사각형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 넓어져봐야 화면이 넓어지는 것이 최선인 기분이다. 



당시 일기를 쓸 때였다. 혼자 호텔에서, 사각 노트북과 티비를 마음껏 보다 왔다. 큰 화면이 좋긴 좋다. 




좀처럼 스마트폰 화면 바깥의 풍경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오늘 같은 날도 식상하지만 금요일 밤이니까, 고개를 들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누군가를 만날까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전화번호부의 저장되어있는 수많은 숫자들이 무색하네. 잠깐 들었던 고개에 비친 세상은 나름 금요일임을 알리듯 어딘가로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아니면, 원래 그런 세상인데 알람 덕분에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잘못한 거다 - 고 핑계를 속으로 대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엔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꽤 심각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상대방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브런치의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심각한 대화가 이루어졌다니, 아니면 오히려 현실을 기계처럼 살고 있는 걸까. 






그래도 오늘은 어제의 충격을 교훈 삼아 아껴 썼다고 4기가 정도의 세상에서 살았다. 오늘은 일터에서 어쩌다 보니 말할 일도 별로 없었는데, 무어가 힘들었다고 목에 이물감이 느껴져 헛기침이 계속 나온다. 아니면 퇴화하는 건가. 문득, 언젠가 다이어트를 한다는 회사 동료들이 "먹방 유튜버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껴요."라고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현실의 나는 배가 고픈데, 그 먹는 걸 보면서 기뻐할 수 있다고? 고개를 잠깐 들었는데 몰려오는 외로움을 느끼다, 얼른 이 글을 마무리 짓고 다시 사각틀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걸로 잊어야지. 왜냐하면 지금은 와이파이와 에어컨이 빵빵한 우리 집 방 안이니까. 무한대의 외로움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편해지면서 더 빠르게 외로움을 불러오는구나. 5G로 바꾸면 얼마나 더 빠르고 많은 외로움을 불러일으킬까. 스마트폰과 통신사를 바꿀 즈음에는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아도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이고, 서로 스마트폰을 놓은 채 시더분한 이야기를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한다. 기왕이면 내가 먼저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일단 오늘 불금은 아쉬운 대로 왓챠에 새로 나온 < 아메리칸 사이코 >로 달래야겠다. 명작이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궁금해서 사람들을 둘러보았었다.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자신만의 사각틀에 향한 채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간혹 사람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당신은 오늘 하루, 

얼마나 외로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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