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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01. 2019

사람이 아닌 사람에 열광하는 시대

버츄얼 인플루언서 시대의 짧은 단상

리얼한 세상에서 흔들리고 있는
감정을 지탱하는 건




♪Koda kumi - real emotion



얼마 전 우리에게 친숙한 KFC의 커넬 샌더스 할아버지를 '이 세상 힙한 샌더스 할아버지'로 꾸며 마케팅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 관련 기사▶ 힙스터로 돌아온 KFC의 커넬, 인플루언서가 되다! )


출처 :  instagram.com/kfc


찾아보니 잘 생겼더라. 인스타그램 속의 샌더스는 말 그대로 '힙했다'. 더 이상 매장 앞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인플루언서가 되어 이런저런 힙스터의 삶을 보여주며 '내가 너희들에게 성공의 레시피를 알려주마. ( #SecretRecipeForSuccess )' 라 말한다. 가상의 인물임에도 10만 명의 팬이 늘었다나 뭐라나. 그런데 자세히 보니 컴퓨터 그래픽이었다. 그러니까 가공의 인물이다. 잠깐, 가공의 인물에 10만 명이 팔로우를 눌렀다고? 백종원 유튜브가 최단기 100만 구독자를 찍은 것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최초의 2D 인플루언서. < Macross >의 린 민메이. 84년작이다. 2D 아이돌의 조상님.


아니메 등, 작품 속 캐릭터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위의 영상처럼 30여 년 전부터. 생각보다 예전부터 있었고, 작품이 아닌 '자체적으로 태어난' - 그러니까 위의 샌더스 같은 - 캐릭터를 따르는 사람들의 역사도 의외로 꽤 길다. 우리나라만 해도 사이버 가수 아담이 태어난 해가 99년이고 당시 앨범을 20만 장이나 팔았으니, 아마 우리네 DNA에도 샌더스 캐릭터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무언가'가 흐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플루언서'라는 단어가 익숙한 마케팅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디지털 마케팅 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데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런 '버츄얼 캐릭터'는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요소가 가득하다. 일단 가상이잖아. 화면 속에만 있는. 그렇게 따지자면 나에게는 '보겸'이나 '제이플라' 도 버츄얼 캐릭터겠지만.






260만 구독자를 보유한 버츄얼 유튜버 Kizuna AI


개인의 감상이야 어찌 되었든, 이러한 가상 인플루언서, 버츄얼 캐릭터들이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우리네 삶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는 모습을 보면 미래의 모습이 조금은 상상된다. 그저 스토리텔링 속 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자신을 따르게 한다. 위의 커넬 샌더스처럼 조금 더 지나면 캐릭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 사는 사람' 이 나올 것이다. 화면에서 보기엔 우리와 같은 공간에 사는 존재들이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버츄얼 인플루언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긴 하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캐릭터를 형성하고, 타깃층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싫어할 이유가 없지. 문득, 패션계의 대부인 닉 우스터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한 패션 감각과 자기 관리, 그리고 그만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큼 연구하고 행했을지 생각하면, 버츄얼 인플루언서라는 존재는 일종의 치터 ( cheater )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게, 저런 할아버지가 어디 흔하냔 말이지. 아니 정말 화면 밖에 존재는 해? 기업 입장에서야 좋을 것이다. 자신들과 합이 잘 맞는, 자신들의 요구들 다 들어주는 인플루언서라니.







♪Hatsune Miku - 沈海小女


위의 영상처럼 저렇게 대형 공연장에 버츄얼 캐릭터가 콘서트를 열고 그에 열광하는 만 명 단위의 사람들이 야광봉을 흔드는 장면. 당장에 우리나라에서 상상하기엔 어려운 장면 같지만, 우리나라도 이미 몇 년 전인 2012년에 국산 보컬로이드인 < 시유 >가 SBS 인기가요에 나왔던 전례가 있으니. 없으리란 법은 없다. ( 그리고 무려 이때 시유의 백댄서는 방탄소년단이었다 ▶ 관련 영상 )


살다 보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 캐릭터 = 오타쿠 '라는 이상한 프레임이 있지만, 2D 사진만으로 10만 팔로워를 늘린 <샌더스>의 그래픽에 <미쿠>와 같은 캐릭터/팬덤이 합쳐지는 시기가 의외로 금방 올지도 모르겠다고 얼마 전 보았던 < 라이언킹 >을 보며 떠올렸다. 카카오 프렌즈처럼 그저 좋아하는 캐릭터로 치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정말 < 주소지 : 유튜브 시 인스타그램 구 blah blah >라는 사람을 동경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시대.





온라인 속 주민이자 연예인.  

사람들이 동경하고, 좋아하는 삶을 살아갈 그들. 화면 속의 그들이 쓰는 화장품을 바르고, 그들이 가는 장소에 가서,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는 날. 가상의 그들은 그 제품이 좋아서 쓰고 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 정말 쓰고 싶을까? 팬심인가? 사실 벌써 그런 모습들이 보이는 것을 내가 애써 무시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10년이나 되어 나름 마케팅이라는 것을 조오금 알게 된 입장으로 샌더스의 < 성공의 레시피 >가 궁금해져서 어제저녁엔 KFC에 방문했다. 어제 먹었던 KFC의 타워버거는 비뚤빼뚤하고 해시브라운이 조금 눅눅했다. 전혀 힙하지 않았어.


환상을 동경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그런 맛이었다.





생각해보면 오늘 이 순간에도 완벽해보이는, 가상에 있는 그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기 위하여 수많은 현실의 사람들이 애쓰고 있을 것이고, 결국 우리가 가고, 먹고, 쓰는 것들을 만드는 것 역시 기원은 같은 사람에 있으니. 이런 가상현실이 다가오는 요즘에도 여전히 현실에 살아감에, 살아갈 것임에 더욱이 똑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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