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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Jul 31. 2019

건강검진이 이렇게 슬플 일이야?

♪Jvcki Wai - Enchanted Propaganda

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어
내가 죽어도 내 돈은 벌어줘



♪Jvcki Wai - Enchanted Propaganda



직장인이 된 다음 개인적으로 민방위만큼 번거로운 것을 하나 고르자면 '건강검진' 이 있겠다. 2년에 한 번 씩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나라의 정책.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에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적비적 병원에 방문하였다. 이번 건강검진은 여느 때와 다르게, 꽤 먹먹해진 기분의 건강검진이었다. 





20대 초중반에는 대학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을 병행했기 때문에, 매번 늦은 새벽이나 공강 시간에 쪽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고, 공연 쪽 일도 있었기에 주말에도 개인 시간도 없고 - 그때는 이 일 자체가 개인 시간이라 생각했긴 했다. - 홍대에 상주해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공연이 없더라도 발을 넓히려면, 일을 얻으려면 홍대에 있어야 했다. 자연스레 술과 담배는 떼어 놓을 수 없었지. 뭐랄까, 술 담배를 안 하는 업계(?)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기도 했다. 포카리스웨트 1.5리터에 소주를 타 먹는 사람들이 있던 곳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해로운 삶'을 살았고, 동시에 즐겼다. 늦게 자고, 몸에 나쁜 건 다 하면서 그렇다고 좋은 건 또 안 한다. 예컨대 운동이라던가 이런 것들. 한 때는 자전거를 타기도 했었는데, 자전거 도로 근방에는 맛집이 많아서였다. 자전거를 타고나서 마시는 맥주도 맛있고. 글의 첫 줄을 위해선 담배 반 갑은 필요하다는 모 기자님의 명(망)언을 따라 헤비 스모커 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캘룩거리던 것도, 시간이 지나니 한두 갑은 거뜬하더라.  지금은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으니, 궐련은 끊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몸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삶이었지만 싫지는 않았고, 바꾸고픈 마음도 없었다. 청춘이 뛰노는 현장 가운데 있고, 그 순간순간이 즐거웠으며, 당시엔 연인도 있었다. 무어 하나 나쁠 것이 없지 않나.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이 된 이후도 비슷했다. 젊은 회사, 신선한 업무들.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회사는 젊은 회사인데, 

그 가운데 10년 차 월급쟁이가 된 내 나이는 그 젊음 사이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반짝이는 일보다는 숫자와 성과에 씨름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다. 어느새? 언젠가 "그렇게 관리 안 하다가 평생 혼자 살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걱정 섞인 어머니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옛말에 어른들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어차피 형식적인 건강검진, 얼마 뒤의 결과지에는 키와 몸무게만 나올 거면서, 왜 나를 슬프게 할까. 즐기며 살아왔을 뿐인데, 왜 나는 스스로 이런 결과지에는 나오지도 않는 검진표를 받아들인 걸까. 마치 이러니까 잘못 산 것 같잖아. 매년 번거롭게 하는 건강검진표는 왜 이런 건 안 알려준 거야. 과태료까지 물게 한다면서 너무하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거고, 어디에서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건강하지 못한 몸이고 

건강하지 못한 마음이다. 

올해의 검진 결과다. 


다른 사람들의 건강검진 결과는 어떨까. 나만 이런 걸까. 언젠가의 예능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뿐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신도림 헬스장' 따위의 검색어를 두드렸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새삼, 지금까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구를 속으로 되뇌며 회사로 향했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정말이지. 건강을 다 생각하다니. 어쩌면, 오늘이야말로 건강검진 다운 날이었다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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