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vcki Wai - Enchanted Propaganda
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어
내가 죽어도 내 돈은 벌어줘
직장인이 된 다음 개인적으로 민방위만큼 번거로운 것을 하나 고르자면 '건강검진' 이 있겠다. 2년에 한 번 씩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나라의 정책.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에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적비적 병원에 방문하였다. 이번 건강검진은 여느 때와 다르게, 꽤 먹먹해진 기분의 건강검진이었다.
20대 초중반에는 대학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을 병행했기 때문에, 매번 늦은 새벽이나 공강 시간에 쪽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고, 공연 쪽 일도 있었기에 주말에도 개인 시간도 없고 - 그때는 이 일 자체가 개인 시간이라 생각했긴 했다. - 홍대에 상주해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공연이 없더라도 발을 넓히려면, 일을 얻으려면 홍대에 있어야 했다. 자연스레 술과 담배는 떼어 놓을 수 없었지. 뭐랄까, 술 담배를 안 하는 업계(?)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기도 했다. 포카리스웨트 1.5리터에 소주를 타 먹는 사람들이 있던 곳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해로운 삶'을 살았고, 동시에 즐겼다. 늦게 자고, 몸에 나쁜 건 다 하면서 그렇다고 좋은 건 또 안 한다. 예컨대 운동이라던가 이런 것들. 한 때는 자전거를 타기도 했었는데, 자전거 도로 근방에는 맛집이 많아서였다. 자전거를 타고나서 마시는 맥주도 맛있고. 글의 첫 줄을 위해선 담배 반 갑은 필요하다는 모 기자님의 명(망)언을 따라 헤비 스모커 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캘룩거리던 것도, 시간이 지나니 한두 갑은 거뜬하더라. 지금은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으니, 궐련은 끊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몸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삶이었지만 싫지는 않았고, 바꾸고픈 마음도 없었다. 청춘이 뛰노는 현장 가운데 있고, 그 순간순간이 즐거웠으며, 당시엔 연인도 있었다. 무어 하나 나쁠 것이 없지 않나.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이 된 이후도 비슷했다. 젊은 회사, 신선한 업무들.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회사는 젊은 회사인데,
그 가운데 10년 차 월급쟁이가 된 내 나이는 그 젊음 사이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반짝이는 일보다는 숫자와 성과에 씨름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다. 어느새? 언젠가 "그렇게 관리 안 하다가 평생 혼자 살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걱정 섞인 어머니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옛말에 어른들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어차피 형식적인 건강검진, 얼마 뒤의 결과지에는 키와 몸무게만 나올 거면서, 왜 나를 슬프게 할까. 즐기며 살아왔을 뿐인데, 왜 나는 스스로 이런 결과지에는 나오지도 않는 검진표를 받아들인 걸까. 마치 이러니까 잘못 산 것 같잖아. 매년 번거롭게 하는 건강검진표는 왜 이런 건 안 알려준 거야. 과태료까지 물게 한다면서 너무하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거고, 어디에서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다른 사람들의 건강검진 결과는 어떨까. 나만 이런 걸까. 언젠가의 예능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뿐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신도림 헬스장' 따위의 검색어를 두드렸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새삼, 지금까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구를 속으로 되뇌며 회사로 향했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정말이지. 건강을 다 생각하다니. 어쩌면, 오늘이야말로 건강검진 다운 날이었다고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