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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Jul 29. 2019

오후 세시의 신데렐라

♪Drop's - Cinderella

신데렐라. 파란 운동화.



♪Drop's - Cinderella



" 엄마. 왜 유리구두는 12시가 지났는데 안 바뀐 거야? "

어릴 적, 동화를 읽어주시던 어머니의 대답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여전히 12시가 지나 왕자가 집어 들은 구두는 유리구두일 테고, 신데렐라는 행복했더랍니다. 고민하지 말아야지. 좋은 게 좋은 거야. 이렇게 불편한 진실을 스스로 만들어 마주할 때가 있다. 행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긋난 심보 탓인가. 그래도 난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데.




" 행복하기 위해서 떠나요. "

일터에서의 삶이 불행했다는 누군가가 길게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기억했다. 그 ( 업계상 ) 후배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게 되어 그것을 찾아 떠난다고 하더라. 지금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쉬면서 찾아 떠나겠노라, 그것이 요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원하는 것을 원할 때 하는 것.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고 나에게 해주었다. 그럼 난 요즘 사람이 아닐까나. 그렇게 원하는 것이 없어 다행일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인스타그램에, #열정에기름붓기 같은 해시태그를 단 채로 유럽의 어디가 예쁘다던가, 무엇이 맛있다던가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 행복도 유럽에 있을까, 명소와 맛집에서 그는 잘 찾고 있을까 생각하며 스카이스캐너 따위를 만지작 거리다 말았더랬다. 그러니까, 대체로 행복은, 원하는 것은 동화 속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어딘가에 흘리기 쉬운 그런 것일까. 그래서 찾아 떠나야만, 누군가 찾아줘야만 만날 수 있는 걸까. 떠나야 찾을 수 있다던 그도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는 " 저는 이 일들을 하면서 새로이 많은 것들을 배워서 좋아요. "라고 했었는데, 그 사람은 일을 하는 시간 어디 즈음 그 마음을 흘리고 간 걸까 막연히 떠올려 보았다.




 

지난주의 지긋한 장마가 금세 그리울 정도로 급작스레 더워진 날씨. 이런 날의 외부 미팅은 딱 질색이다. 지난주의 습기와 오늘의 햇빛이 어우러져 어휴. 택시를 타도 창 밖에서 들어오는 더위는 뒷좌석의 조그만 에어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땀을 줄줄 흘린 채 들어가기 그래서 조금 일찍 움직여 미팅 장소 근처 카페에서 땀을 식혔다.


커피를 마시며 다시 한번  미팅 내용을 확인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파티 다음 날의 신데렐라는 결국 행복해졌지만,  파티를 가기 전, 오후의 신데렐라는 참으로 힘들었더랬지. 하며. 머언 어릴 적 어머니께 했던 질문을 끄집어내어 떠올린 건 그래서였을까. 신데렐라가 흘렸던 유리구두는 아직 오지 않은 행복에 대해 오후의 신데렐라가 그토록 바랐던 소망이었구나. 모든 것을 현실로 돌이키는 마법의 힘마저 이겨낼 만큼 행복하고 싶었고, 그만큼 오후의 신데렐라는 힘냈구나.


  



오피스가 즐비한 강남 어딘가에는, 수많은 '오후의 신데렐라'가 바삐 걷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퇴근 즈음 밤이 드리울 즈음엔 모두가 행복했으면 했다. 해가 길어져 밤은 늦게 찾아오겠지만 나도, 당신도. 비록 12시가 지나 하루의 마지막, 잠자리에 누운 시간엔 '오늘은 행복했을까?'며, 아리송하게 잠들지라도, 우리의 신발장엔 구깃한 운동화와 구두뿐이어도. 어딘가에 유리구두 한 켤레 즈음은 흘린 채 잠들 수 있기를. 언젠간 돌아오겠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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