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워서 부서질 것만 같아 내가 미쳐버리기 전에 내 정맥에 '그걸' 놓게 해 줘 그리고 이 빗속에서 나와 함께 춤추지 않을래?
♪WHOwho - Dance In The Rain
일요일에는 밤을 새 버렸다. 평소에도 잠을 잘 못 자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가끔 잠을 아예 못 자는 날에는 잊었던 약이 떠오른다. 방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약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 밤이었다. 그만큼 무언가 허무한 듯, 또 예민한 주말이어서 감정을 이기지 못한 탓에 이 나이를 먹고 부모님께 대들기까지 했지 뭐야. 그 모양새만 떼어내 영상으로 만들었다면 사회에서 제대로 밥벌이 못하는 무능력하고 여태까지 캥거루족인 아들이 방구석 여포처럼 나대는 추한 인생극장 느낌이었을 테다. 아마 대체로 그 모양이 맞기 때문에 잠을 못 잔 건가 싶기도 하다. 꿋꿋하게 눈을 감고 아침을 맞이한 내가 대견할 따름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병명들이 있고 나에게는 의사가 내려준 '우울증'이라는 병이 있'었'다. 아직 이렇게 잠을 잊는 밤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녀석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불면증이라고만 생각했지. 정신이 걸리는 감기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보통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이 쓴 이야기다. 아마 내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셨던 의사 선생님도 매우 건강하신 분이시지 싶다. 제일 처음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되새김질해보자면 어떤 이야기를 했고, 들었는지는 지금에서야 잘 떠오르지 않지만 항상 '행복하신가요?' 나 '기분이 좋아지셨나요?'로 대화의 마무리를 지으셨던 분이셨다. 그때는 행복하면 이 곳에 오겠냐며, 그저 놀리는 느낌이 들어 그 분노로 인하여 강제로 나았던(?) 기억이 있다. 그것을 노리신 거라면 성공이시겠다.
그렇게 보면 정말 감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전 세계가 그 '감기'에 꼼짝 못 하는 것을 경험하는 이 시대에, 감기는 더 이상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단어는 아니게 되었고, 나 역시도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도 감정의 감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세상사 맘처럼 되는가. 어제도, 오늘도 나는 세상의 이런저런 일에 감정적으로 휘둘렸고, 가만히 있어도 급작스레 몰려오는 감정에 파도에 무너지고 있다. 다시금 약봉지를 보지 않을 정도로 정신을 잡는 것은 그러니까 나로서는 정말 대견할 따름인 것이다.
사실 내 정신 상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꺼내야 하고, 이 시간들 속에서 너무나도 복잡한 계기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선가부턴 내가 이래 먹어서 그런 거지, 하고 체념한지라 과거의 것들은 모두 넘어갈 수 있더라도, 분명한 건 지금의 내 주변은 내 정신 건강에 하등 도움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콕 짚어 인간관계, 회사 관계라고 할 것 없이 하루하루가 그렇게 촘촘히 잠식하듯 흘러간다.
어쩌면 남들은 쉽게 웃어넘길 수 있는 환경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도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연차를 떠나 그 시절의 나는 같은 공간, 같은 자리에서 하하호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래 먹어서 그런 거라고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이 언제까지 내 탓만 할 순 없지 않겠는가.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음 질릴 텐데 내 탓이야 말해 무엇하겠나. 그러니까, 사실 못난 모습이었지만 지난 주말 집에서도 과민하게 반응한 것은 괜히 이유 없이 그랬던 건 아니긴 한데... 라며, 못난 마음에 대한 핑계를 속으로나마 뱉으며 조용히 남 탓도 하는 것이다.
이런 가라앉고 힘든 마음을 풀어보고자 올해는 그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세상은 그런 것들을 비웃듯이 더욱 가열차게 몰아세운다. 사실 바뀐 건 없고 내가 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도록 지친 걸 지도 모르겠다. 이런 세상에 대한 꼬인 마음과 또 진심을 담아 상대방에게 종종 "행복하셨나요?", "행복하세요" 따위의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버릇이 된 것을 보면, 어쩌면 처음 만났던 의사 선생님의 마음도 감기가 걸렸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 선생님은 정말 건강한 분이셨을까?
아프신지는 모를 일이지만, 사실 누구라도 아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세상이다. 지난 한 주에만 해도 그 주제는 다르지만 각계각층에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슈거리로 시끄러워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모양을 떠올리며 떠난 것은 아닐 텐데 그들이 안고 있었을 것들을 안주삼아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괜히 슬퍼져 그저 심심한 안녕을 빌었더랬다. 감기가 사람을 죽이는 세계에 살지 않나. 그러니까, 그저 감기에 걸리신 겁니다. 병원을 가면 후딱 나을 정도. 그만큼만 아팠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만큼을 못 이긴 안타까움을 담아.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잘잘못을 떠나서 말이다. 그들의 생애 잘잘못을 논하고 생각하기엔 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탓이었다.
내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누군가가 생각의 끝을 보았거나 상관없이 세상은 우스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갔다. 월요일에는 밀렸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듯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아픈 몸임을 증명하듯 우산을 쓴 채 절뚝이며 걸음을 옮겼다. 잠을 못 잔 다음 날이었고, 그 날의 내가 지냈던 곳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했고,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몸뚱이는 엉망이니 오분 남짓 거리의 집이 그렇게도 멀리 보이고, 술을 왕창 마신 것처럼 눈 앞이 핑핑 돌았더랬다. 아, 나도 이제 한계일지도 몰라. 멍하니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어질어질한 채로 서 있자니, 앞에 서 있던 분의 어깨가 들썩임이 느껴졌다. 언젠가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며 우는 사람을 보았더랬다. 그런 사람인 걸까? 나와 비슷한 마음일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린 탓에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를 벗고 있던 그분은 웃고 있었다. 다시 아무렇지 않게 앞을 바라보는 그 사람은 조금 더 격하게 어깨를 들썩였다. 아마 비트에 맞춰 어깨를 흔드는 것 같았다. 발도 까딱까딱, 무릎도 흔들거리며 이윽고 빗 속에서 춤을 추더란 말이다. 분명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알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고,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아니었었도, 아마 집에는 왔었겠지만 웃으면서 집에 오진 못했을 테다.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어제 날카롭게 말한 것은 마치 없었다는 듯이.
"다녀왔습니다- 아 맞다 아까 집 앞에서~"
이 작품을 아시는 분 최소...!
빗 속의 춤을 자꾸 떠올리다 어릴 적 슬플 때 해야 할 것을 배웠던 기억이 났다. 현겸이가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을 힙합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던가. 빗속에서 춤을 췄던 그 사람은 슬퍼서 춤을 췄을까. 들었던 음악은 요즘 힙합이었을까. 모를 일이지만 그저 이렇게 답도 없는 생각으로 지새울 바에야 나도 춤이나 추는 게 나은 삶이겠지 라는 헛생각을 하며 내적 댄스를 추느라,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이틀 째의 밤은 그렇게 슬픔을 털어내는데 써서인지 잠을 못 잤었도 월요일보단 조금 덜 피로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어제도 힘든 마음이 차오르던 차에 2000년대 초중반의 유행가를 크게 부르며 회사 앞을 휘적휘적 걸어가던 행인을 보았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누군가가 힘들지는 모를 일이겠지만, 하루하루 틈틈이 문단 문단을 띄엄띄엄 쓴 탓에, 마음이 이 모양 이 꼴인 탓에 뒤죽박죽 한 이야기지만 혹여나 이 이야기의 끝까지 온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힘들다면, 눈치 보지 말고 적어도 나처럼 눈치껏 힙합이나 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적어도 살아는 지겠지. 우리 모두, 살아는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