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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Sep 21. 2019

범사(凡事)에 의연해라.

♪심규선(lucia) - 부디

부디 그대 나를 안아줘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제발 이 거친 바람이
나를 넘어뜨리려 해



♪심규선(lucia) - 부디


이전 글을 쓰고 (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다. ), 정말 '직후'에 여러 가지 일이 나에게 겹쳐 몰려왔다. 기대를 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 썼더니만, 가만히 있는 삶마저 아파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저 이야기를 썼던 순간의 내가 건방져 보였다. 입이 방정이지. 그제와 어제는 그렇게 한동안 정신이 없는 채로 있다 이제야 정신을 조금 차렸다. 사실 아직 해소된 건 아니지만. 






성경에는 유명한 구절이 하나 있다. 

<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 모든 일에 감사함을 가지라는 이야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한 것을 잃었을 때에야 그 감사함을 깨닫고 뒤늦게서야 기도를 한다. 내가 그렇게 살아와서 찔림에 그리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손에 이미 쥐고 있는 것의 소중함은 보통 빛바래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유의어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지 말자 >라는 말도 있던가. 다르지만, 결국엔 같은 교훈이다. 


나에게 있어 당연하고 익숙한 것, 이라고 생각하는 단어 중 하나를 꼽자면 < 가족 >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 가족은 서로 이야기할 때도, 참으로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고 구성원도 부모님에 1남 1녀. 다만, 이 가족도 고슴도치 같은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의 불편함이 있어, 자꾸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는 못된 습성이 있다. 가족은 이미 나에게는 손에 쥔 무언가와 같아서일까. 






" 어머니가 많이 안 좋으시다. " 

이 곳에 병명까지 쓰기에는 그렇지만, 퇴근길에 받은 아버지의 전화 너머 목소리는 떨리고 계셨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을 그대로 옮긴듯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릴 정도였으니, 어머니의 편찮음이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보지 못했어도 알 수 있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재촉한 발걸음과 달리 그날 밤은 정말이지, 길고도 길었다. 


다행히, 다음 날 바로 병원에서의 검사 결과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여 가족 모두가 한 숨 놓긴 했지만 환갑을 넘기신 부모님이시지 않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하루 종일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평소보다 집으로 일찍 들어갔던 저녁, 나와 동생을 앉혀놓으시고 우리 집의 재산들을 말해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가족이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에 그런가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가족 사이에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주말 아침. 아버지의 특제 토스트 샌드위치로 네 가족이 거실에 조르르 앉아 늦은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아이 뭐, 다음 주 월요일에 입원해서 좀 더 검사받고~" 라며, 안방에서 남 이야기를 하듯 통화하시는 어머니와, 영화 채널에서 철 지난 sf 영화를 감상하시는 아버지, 방에서 휴일을 맞이하여 뒹굴거리는 여동생을 뒤로한 채 일을 보러 밖으로 나섰다. 가족에게 그런 이벤트가 없었다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주말 풍경이었다.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의연해라." 

일을 할 때 어떤 일에서도 흥분하거나 감정에 휩쓸리면 실수하기 마련이라며,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는데, 그렇게 입버릇처럼 가장 많이 했던 말을 아버지께 문자로 받아들이니 이 와중에 웃음이 났다. 그래. 의연해야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 의연할 수 있어요!"라는 후배들의 핀잔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의연하게 사는 것은 참 힘든 삶이구나, 미안했다. 라며 또 한 번 반성했다. 정말이지, 평온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내일은 태풍이 몰아친단다. 의연하게, 글을 마쳤다. 


모든 것은 원래 그런 것도, 항상 있는 것도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느낀 이틀이었다. 물론 지금도 느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의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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