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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Sep 23. 2019

당신이 원하는 집의 모습은

♪Night off- 잠

벽에 기대어 앉으며
짐을 내려놓으니
한 줌의 희망이
그토록 무거웠구나.

    

♪Night off- 잠


" 오 이거 좋은 이어폰 아닌가요? " 

" 그... 글쎄요. 만족하면서 쓰곤 있어요. " 


누군가가 나에게 던진 별 시더분한 관심은 이내 가지고 있는 전자제품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이런 걸 썼었다/쓴다 따위의 이야기의 끝에는 " 와, 부르주아시네. "라는 말로 끝이 나니 시간이 아까웠다. 부... 부르주아라니.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이야기에 나왔던 대부분의 제품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나보냈으니, 난 프롤레타리아일까. 






어릴 때는 - 그러니까 그 어릴 때를 딱 잘라 언제까지라고 말할 순 없지만 -  무언가 소유하는 것에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남성 잡지 속 멋진 옷도 입어보고 싶었고, 남보다 좀 더 나은 무언가라고 생각된다면 아낌없이 써서, 언젠가는 이렇게 살면, 사면 안 된다며 정말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처럼 신용카드를 잘라버렸던 때도 있었지. 지금에 와서는 그때만큼 물욕이 강하진 않아, 이제 태풍이 지나고 점점 추워지는 계절이 올 즈음 한 번 더 옷장이나 서랍 속 물건들을 내어놓고 나면 과거의 욕심들이 거의 버려질 것 같다. 물론 쇼핑몰 장바구니에 몇십만 원어치의 무언가 들이 담겨 있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무어가 그리도 헤지고 허한 지, 

버려지고 채워지는 삶의 연속이다. 






< 미니멀 라이프 >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도는 요즘 언젠가의 자리에서 자신의 집을 미니멀하게 꾸몄다며 사진을 보여주는 지인의 집이 떠올랐다. 집에 있던 것들을 거의 다 버리고 새로이 레트로 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소품들로 꾸몄다는 이야기에 그걸 미니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라며 속으로 웃었다. 앗차차 나나 잘해야지. 


이야기를 마친 뒤, 혼자 보내는 초조한 시간. 머지않은 시기에 나 역시도 독립을 할 테고, 나만의 공간을 채워나갈 테니 조금이라도 요즘의 울적한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나도 가상의 집에 원하는 것들을 채워보고자 했다.





 

20대의 끝자락에 처음 나만의 집을 구매했었다. 경기도 허허벌판 가운데 덩그러니 세워진 집에서부터 서울 변두리까지 꾸역꾸역 삶과 시간을 모아 온 집.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집에는 어떠한 목적과 목표보단, 욕심과 감정이 앞서 있었다. 그래서 그 때때마다 현실보다 무리했고, 무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의 집이다. 깔끔하다-기보단 허한 느낌의. ( 출처 : 공의경계 中 )

그때의 욕심들도, 욕심을 부렸던 이유마저도 사라진 지금에 와서 그 집에 무엇을 채울까 고민을 해보니 하얀 벽지에 침대와 냉장고만 있으면 - 어느 아니메에서 보았던 덩그러니 한 - 더 채울 것도 없는 그런 인테리어가 완성되었다. 삶을 돌아보니, 그렇더라. 기분과 닮아있는 집이어서 썩 마음에 들었다. 이 기세로 나도 미니멀리스트에 도전해야겠다. 이런 나에게 부르주아라니. 그런 사치로운 말을 들은 것마저 사치로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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