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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Oct 04. 2019

영화관을 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Nell-희망고문

잠겨버린 이 마음에
맞는 열쇠가 필요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두려움 없는 설레임과
살아 숨쉬는 감정들과
유치한 희망이 필요해


♪Nell-희망고문


사실은 나도 오늘 < 조커 >를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DC 캐릭터에 큰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에서는 배트맨보다 조커와 펭귄맨을 좋아했던 추억 때문이다. 아 어제는 "차라리 빌런이라고 불러줘!"라고 했더랬지.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드라. 여하튼. 오늘은 개천절이고 마침 눈 뜬 아침에는 어제 비가 무색하게 맑은 날씨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영화보기 참 좋은 날이었겠다.  






우리 집 앞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씨네 Q>라는 영화관이 있어 최신 영화들도 생각보다 널널하게 볼 수 있고 자리가 양 팔걸이로 넓은 곳이라 종종 이용한다. 그래서 씻기도 전에 침대 위에서 영화 시간들을 알아보았다. 습관처럼 내 가방까지 앉힐 두 장을 야무지게 예매하고 씻고, 옷까지 입었다. 자 이제 나가볼까며 현관문까지 갔다가 문득, 생각이 바뀌어 다시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야무지게 예매를 취소했다. 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아직 2주나 넘게 남은 과제를 할까 하다 대학교 때도 안 하던 짓은 하지 말자며, 업무 메일을 뒤적거리니 불편한 이야기 몇 개를 읽게 되어 그대로 컴퓨터를 끈 채 오랜만에 거실로 나왔다. 어머니가 소파에서 쉬고 계셨다. 모자가 단 둘이 있는 때도 흔치 않으니 라며 나도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귀리 가루를 우유에 타 먹고, 말린 팽이버섯을 꼭꼭 씹어먹었다. 아, 특이한 맛이었다. 맛있었어. 조커를 못 본 대신에 철 지난 사극도 보고, 와중에 어머니와 비빔면도 끓여먹었다. 유튜브에도 재미있는 예능이 있다며 TV로 유튜브를 보는 법을 알려드렸고 그러다 보니 밤이 되었다. 딱히 무언가를 생각했던 것 같진 않다. 그래서여서인지 꽤 시간이 잘 갔다. 웬만한 킬링타임 영화보다 나은 듯. 아마 올해 들어 거실에 가장 오랜 시간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방에 누워 이런저런 SNS를 뒤적거리니 이런저런 사람들의 조커 감상 인증 릴레이가 펼쳐져 있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이 올린 이런저런 형상의 조커들을 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조금 유치하고 치사한 이유로 웃은 거라 속으로 담지만, 역시나 보러 나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침에 한 장의 자리를 예매했더라면 나도 현관문을 나서, 조커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꽤 긴 시간이 흘러도, 양팔걸이가 있는 자리여도 이 '한 자리만큼의 거리가' 좀처럼 메꿔지지 않는다. 그렇게나마 마음을 다독이고 시계를 보니 또 하루가 지났다. 답게 보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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