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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그린 Oct 09. 2019

다들 내 이름 새긴 타임머신 하나쯤 갖고 있잖아요?

누군가로부터 올 편지를 기다리는 건 설레는 일이다.

어린시절, 나는 편지를 참 많이 썼었다. 멀리 사는 사촌에게도, 다른 도시로 이사간 단짝 친구에게도 참 꾸준히도 편지를 보냈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께도 보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령의 연세의 할아버지가 우체국도 없는 ’리’ 단위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어떻게 편지를 보내주실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손때묻은 낡은 나무로 된 서랍속에서 오래된 편지지를 꺼내 손녀에 보낼 글을 한자한자 적어하얀 편지봉투에 넣고 어떻게 보낼까 우체국까지 이 편지를 좀 보내달라고 부탁해볼까? 혹은 내일 물어물어 우체국까지 가볼까? 편지에는 글자로 표현되지 않은, 편지를 쓰는 그 모든 과정에서 쓴이가

느꼈을 감정까지도 같이 배달이 된다.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다양했다. 생일이어서, 방학이 시작되어서, 크리스마스여서, 학교에서 상을 타서,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 지금보니 편지를 쓰기 위한 이유를 만들었던 거 같아.


퇴사날 받은 선물.  주는 이의 나를 생각한 마음이 가득가득 넘치게 들어있었던 편지와 책 선물. 이날 받은 책은 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어떤날은 편지와 함께 받은 선물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단순히 선물이어서가 아니라, 이 선물을 고르기 위해 그 바쁜 시간 중에 나를 위한 시간을 내줬다는 것, 그 모든 과정동안 상대방이 나를 계속 생각했다는 사실고맙기만 하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가 내가 보낸 쪽지를 몇년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생각날때마다 꺼내 본다는 것. 뭉클해지는 경험이다.


때로는 내가 받은 편지보다, 내가 보냈던 편지로 인해 심쿵할때도 있다.

퇴사했다고 하자 같이 일했던 해외지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동료가 오늘 보낸 카톡 사진. 사실 선물만 보내기는 좀 뭐해서 짤막한 메모처럼 남겼던 쪽지였는데... 이걸 버리지 않고 이렇게 예쁘게 보관하고 있었다니... 힝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써서 보내줄걸...


오랜만에 지나간 편지를 다시 펼쳐놓고 읽어본다. 여전히 그때의 감정이 오롯이 느껴져져서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20년전의 그 순간을, 20년 후에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편지가 주는 마법이 아닐까.

날씨가 추워지면 마음도 같이 어는 것 같다.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이번 주말 편지 한통을 써야겠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가을에도, 겨울에도, 그 다음해에도 따뜻한 나날이 계속 되길 바라는 나만의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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