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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sido Aug 17. 2021

여름의 일기


한때 밝았던 방과

빛이 들던 책상

한 여름의 습기 속에서 축축히 늘어져 수영을 하는 날이면

무슨 문장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공책 위로 장난 같은 고백들을 늘어놓았다


겨울에는 두 명의 사람을 죽였고

동생이 맞는 걸 보고도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며

꽃 하나 꺾어 찾아가고픈 사람이 있을 만큼 누구를 미워했다고


하늘은 어느 계절에나 떠있고

아득한 거리를 재보려는 날이면

끝에서부터 끝으로 늘어놓은 마음이 차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렇게 수영을 하다 보면

코로 물을 들이마시고

소독약인지 피인지 냄새나는 것과 몸을 섞어

나를 온통 숨기고픈 여름날을 지나고 있다고


구해 줄 사람은 없으니 이 턴이 끝나기 전 까지는 혼자서 팔을 저어야 하고

다리는 자꾸 저릿저릿하고

풍덩 바다에 빠진 것처럼 상상하면서

파도를 닮지 않은 거품들과 춤추는 척을 했다


나는 아직 아무도 죽이지 못했고

누구를 미워할 용기가 없어 쉽게 돌아서는 와중에도

동생에게 손을 내밀지는 못했다


여름 위에 둥둥  일기는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 수도 없는데

자꾸만 하늘과 계절이 섞이는 기분이라 어지럽다


한때 밝았던 방과

빛이 들던 책상


익숙한 여름을 떠난 일기들이 제 주인처럼 저린 팔을 펄럭대며 어디로 흘러가고 있다

어쭙잖은 고백들과 거짓말을 담고서

파도를 담은 하늘과 섞이고 있다


언젠가는 아주 멋진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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