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2장 34절
“자, 여기 모인 여러분은 주님의 종 모세와 저의 명령을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책임도 다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여호수아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전쟁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들은 요단강 서쪽에서 다른 지파들을 도와 7년이 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르는 동안 요단강 동쪽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드디어 그들은 여호수아의 축복을 받고 전쟁에서 얻은 많은 재산을 챙겨서 기쁘게 맞아줄 가족들을 생각하며 고향 땅 길르앗으로 향했다. 끝없이 걷던 그들은 요단강 언덕 가에 이르자 잠시 멈췄다. 그리고 늘 변함없는 요단강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누군가 진지한 목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깼다.
“우리가 저들과 전쟁을 함께 치렀지만, 우리가 죽고 나서 저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하면 어쩌죠?”
순간 모든 사람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한참 후 누군가 크게 외쳤다.
“그럼 증거로 뭔가를 남깁시다!”
그래서 나는 가나안 땅 요단강 언덕 전망 좋은 곳에 살게 되었다. 아주 큰 제단인데 이름은 ‘엣’으로, ‘증거’라는 뜻이다. 나는 여호와의 단과 쌍둥이처럼 닮았는데, 크기는 꽤 큰 편이다.
나의 하루는 해가 뜨면 요단강을 바라보며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서쪽에 사는 이스라엘 아홉 지파 반과 동쪽에 사는 두 지파 반이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요즘은 하루하루 평안하게 지내지만, 내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내가 지어지고 얼마 안 돼서 큰 전쟁이 일어나 부서질 뻔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오해가 잘 풀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날 아침도 일찍 일어나 늘 하던 대로 양쪽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실로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축제가 열리나 했는데, 점점 전쟁 준비로 바뀌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동쪽 지파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롭게 소와 양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예전에 들었던 전쟁 이야기가 떠올라 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먼저 서쪽에 있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각 지파의 대표들을 모아서 요단강을 건너 동쪽으로 향했다. 그들의 입술은 굳게 닫혀있었고,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후 동쪽 길르앗 땅에 도착한 그들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를 한곳으로 모았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소환된 그들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안부를 다 묻기도 전에 비느하스가 잔뜩 화난 목소리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왜 여러분의 제단을 따로 쌓은 겁니까!
정말 이것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임을 모르는 겁니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어버렸다. 이게 다 나 때문이었다니…. 내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인가? 제단이지만 난 한 번도 제사를 지낸 적이 없는데. 맹세코 한 번도 여기에서 번제나 소제, 화목제를 드린 적이 없었다. 그들이 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나중에라도 내 위에서 제사를 지낼 생각이었나? 나는 나도 모르는 계획이 있는가 싶어서 동쪽 사람들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들의 말이 다 끝나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동쪽 지파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오해십니다. 우리가 이 제단을 쌓은 것은 제사를 지내려는 게 아닙니다. 절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서쪽의 대표들이 그들의 말을 믿어주길 바라며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 순간 불현듯 나는 그들이 나를 다 쌓고 나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분명 저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겁니다. 이 제단이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가 될 겁니다!”
동쪽 대표들이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자 그제야 비느하스와 대표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나도 온몸의 긴장감이 스르륵 풀렸다. 그들도 화난 얼굴을 풀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표단은 올 때와는 달리 콧노래를 부르며 환한 얼굴로 요단강을 건너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계속 전쟁 준비를 하고 있던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긴장해 있었다. 마침내 돌아온 대표단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백성들의 표정도 이전처럼 밝아졌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는데, 그 노랫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아무튼 큰 오해가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화목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여호수아 22장 34절]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