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라우라 파우시니(Laura Pausini)!
2021년 [미나리]의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에 모두가 기뻐하던 그때, 나는 주제가상에서 호명된 또 다른 이름에 정신을 뺐겼다. 잊고 있었는데, 너무 보고 싶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음반을 사서 나오던 겨울이 떠올랐다. 나는 잉크가 바랜 표지의 해적판 CD를 듣고 또 듣다가 백화점 레코드샵에서 거금을 들여 그 음반을 샀었다. 그 시절 그녀의 음악은 내 사치의 대상이었다.
이후 오스카에서도 내심 그 이름이 불리길 기대했지만, 다이앤 워런의 피아노에 맞춰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자기 생의 앞]의 주제가 <Lo sì(Seen)>를 부르는 모습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정말이지 다이앤 워랜이 오스카만 15번째 꾸준히 후보에 오른 것도, 수상하지 못하는 것도 참 신기하다. 그녀 때문에라도 매년 오스카를 볼 수밖에 없다는... )
https://www.youtube.com/watch?v=imjSm7FNmwE
8살 생일날, 그녀는 피아노 연주자였던 아버지가 공연했던 피자 가게, 나폴레오네에서 저녁을 먹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후, 아버지는 미리 인형을 준비해 놓고 원하는 선물을 물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꼬마소녀는 ‘마이크’라고 대답했고, 이후 그는 자신의 무대에 종종 딸을 세웠다. 이미 그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속에는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꿈이 자라고 있었다.
이후 음악뿐 아니라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뛰어난 이탈리아 파엔차(도자기의 도시)에 있는 예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19살이 되던 해 산레모 페스티벌에서
<La Solitude>를 부른 후, 삶의 방향이 재정리되었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Laura Pausini>라는 첫 앨범을 냈고,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어서 많은 음반을 냈고, 수많은 무대에 섰다. 앨범 판매 수가 전 세계적으로 7천만 장 이상으로 추정되고 226개의 플래티넘 레코드(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보유하고 있다니 이탈리아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넘어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양한 언어로 발매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팬층이 넓다. 8개 국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콘서트를 보면 얼마나 유창성을 알 수 있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에서 시작해 거의 완벽한 스페인어 그리고 프랑스어, 영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독어 그리고 심지어 남미 원주민어인 과라니어까지 한다고 하니 글로벌이란 수식어가 이보다 어울리는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많은 앨범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2001년에 발매된 <The Best of Laura Pausini: E ritorno da te>를 추천한다. 베스트 앨범이라 보석 같은 곡들이 가득하다. 특히 그가 데뷔곡 <La Solitude>을 들어보면 감성 짙은 초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르코는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그녀가 14살 때 첫 번째 남자 친구인 마르코와 사랑의 경험을 담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남친에게 배신당한 외로움을 노래한 소녀의 이야기가 이렇게 애절하다니...
https://www.youtube.com/watch?v=JaglX6XQTLo
배우 조승우도 입대 전에 뮤지컬 배우 이영미와 함께 <이 길 위에 서서>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고 하니 얼마나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곡인지 짐작할 수 있다. 비교해서 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4ERuKshCvDQ
또한, 그녀는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도 자주 한다. 루치아노 파파로티부터 카일리 미노그, 마이클 부블레, 레이 찰스, 알레한드로 산스, 미겔 보세, 이베테 산갈로, 이베치 상갈루, 마크 앤소니, 안드레아 보첼리, 알렉스 오바고 등 수많은 유명 뮤지션과 함께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X9AHBCfmE&list=PLsFFBBtOODOaTURb79u-nrtU_zU0S9nl6&index=1
https://www.youtube.com/watch?v=PCAtFty4q0U
https://www.youtube.com/watch?v=VWIgHRuIQGU
특히 리차드 막스가 그녀에게 써준 곡이 있는데, 이후 자신의 앨범에도 수록<One More Time>해서 인기를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라우라의 버전이 더...
https://www.youtube.com/watch?v=9sbmHk_kcJc
그간 상복도 넘쳤는데, 특히 2006년에 라틴 그래미에서 '최우수 여성 팝 보컬 앨범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가수가 라틴 그래미상 올해의 인물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샤키라와 글로리아 에스테판에 이어 당당히 이 상을 받은 세 번째 여성 수상자가 되었다. 그녀가 이 상을 받으면서 그토록 흥분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전 수상자들을 쭉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 그녀는 18년 동안 100% 이탈리아인으로 살았지만, 나머지 31년은 이탈리아인이자 라틴인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라틴 음악을 사랑하는 뮤지션이다.
2023년, 음악 인생 30주년을 맞이한 그녀는, 새 앨범 <Almas Paralleles>를 발매했으며, 18년 동안 함께해 온 남자 친구, 기타리스트이자 음악감독인 파올로와 결혼했다. 올해 그녀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거쳐 파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멕시코,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9번째 월드 투어에 푹 빠져 있다. 그녀는 투어 중인 지금 생활이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얽히는 파티'이며, 그간 나이에 밀리면서 이제 한물간 가수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지만 지난 30년 동안 안주하지 않았고, 좌절해도 무너지지 않았으며, 일상을 즐겨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영화계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이반 코트로네오(Ivan Cotroneo)가 감독을 맡은 자서전 영화 [라우라 파우시니-만나서 반가워요]가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개봉되기도 했다. 그녀에게 팬데믹 기간에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잊고 있던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녀의 음악에는 사랑과 그리움, 아픔, 노스탤지어, 시,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심장 이곳저곳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인다.
가장 최근에 푸에르토리코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루이스 폰시와 함께 부른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인 <Roma>과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티아고 요르크와 부른 애절한 사랑 이야기 <Durar>를 소개하고 싶다.
음악적 실력을 상수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꾸준히 변화하고 발전하며 남녀노소 막론하고 유연하게 협업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 개인으로도 참으로 존경스럽다.
오랜만에 그녀의 음악을 듣다보니 한 다큐멘터리 제목이 떠올랐다.
[과거는 항상 새롭고, 미래는 늘 그립다]
내게 그녀의 음악은 항상 새롭고, 앞으로의 음악은 늘 그립다.
https://www.youtube.com/watch?v=NOebfEFJW6Y&list=OLAK5uy_nina5liFoLP7PhttPcgPhz7x0KaC3aK_M
https://www.youtube.com/watch?v=04uRsVmH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