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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Mar 26. 2022

[송포어스. 12] 핑크 마티니

내 사랑

지도 전체에 퍼져 있는 음악!

   

여러 해 전 예술의 전당에서 그들을 직관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감동으로 쓰러지고 말리라는 결연한 마음으로 작정하고 간 콘서트. 월드뮤직에 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을 모르는 친구 녀석에게 너도 감동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최면 비슷한 걸 걸어서 함께 갔었다. 한참 그들에 대한 애정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라 마지막 앵콜 순간까지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상대로 열기는 뜨거웠다. 춤에 적극적인 몸이었다면 분위기를 더 탔을 텐데, 일어나서 과감하게 흐느적거리던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만 했다. 왜 마음과 몸은 늘 따로 논단 말인가…. 분명 포스터 앞에서 셔터를 눌렀을 텐데 사진을 찾아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영화 ‘핑크 팬더’와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름, 핑크 마티니! 이 두 영화를 고른 걸 보면 리더인 토마스가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열혈팬이 아니었을지…. 이들 앞에는 월드뮤직 밴드를 넘어 UN 밴드, 샤론 스톤도 춤추게 만든 밴드 등의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지금까지도 드라마나 영화, CF 등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은 몰라도 음악은 한 번쯤 다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 밴드이지만 해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놀라운 외교적 기회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이질적인 국가인 미국은 모든 국적과 언어,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아메리카 원주민을 제외한 모든 국가, 모든 언어, 모든 종교에 뿌리를 둔 이민자입니다.(토마스 로더데일)”     


25개 언어로 노래하는 12명의 음악가로 구성된 다문화 축제와 같은 이 밴드는 유럽과 아시아, 그리스, 터키, 중동, 북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남미 및 북미 전역의 콘서트 무대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국어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무대 위에는 보컬 외 피아노, 업라이트 베이스, 트럼펫, 첼로, 바이올린, 콩가 드럼, 드럼, 퍼크션, 기타, 트럼본의 악기가 포진되어 있다. 이 밴드의 리더인 피아노의 토마스 로더데일(Thomas Lauderdale)과 매력적인 보컬 차이나 포브스(China Forbes)는 하버드 대학 동창이다. 대학 시절에 음악 활동을 했지만, 정치계와 배우로 각각 활동하면서 각자의 길을 걸었었다. 그러다가 로더데일이 1994년에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대의를 위한 정치 기금 마련을 위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흑인, 아랍계 형제가 있는 집안에 입양되어 자랐는데, 다양한 음악적 경험이 이런 멀티 컬러풀한 밴드를 만드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차이나 포브스는 하버드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하고 배우로도 활동했다. 미 국무장관이었던 존케리와 사촌 관계이니 집안을 짐작해 볼 수 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밴드에서 특히 좋아하는 연주자가 있는데 바로 하프의 모린 러브(Maureen Love)이다. 정식 구성원은 아니지만, 자주 등장하는 게스트 연주자 중 한 명이다. 그녀가 무대에서 쏟아내는 청량하고 환상적인 폭포를 들으면 누구라도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참고로 그녀는 예술적 영감이 풍부해서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Amado mio의 도입부에 약 5초 정도 쏟아지는 하프의 글리산도를 듣는다면 이 곡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게 그녀는 하프는 이 밴드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가장 환상적인 갈고리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CbzWiJLVhk 

Amado Mio by Storm Large


밴드의 데뷔 앨범인 Sympathique는 1997년에 발매되었고 이후 프랑스의 권위 있는 음악상인 빅투아르 드 라 뮈지크(Victoires de la musique)에서 올해의 노래, 최고의 신인 아티스트 후보에까지 올랐다. 리드미컬한 피아노와 현악의 따뜻한 조화, 그리고 나지막이 깔리는 브러쉬 스틱 소리까지... 프랑스 감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예쁜 곡이 있는데 바로 Hang On Little Tomato이다. 재즈 스윙과 클라리넷 멜로디가 가장 따뜻하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VQScgIeag

Sympathique


https://www.youtube.com/watch?v=kiaBbzLJteY

Hang On Little Tomato


그리고 그들의 매력은 다양한 나라의 유명 가수들과의 콜라보에서 배가 된다. 특히 일본의 유명한 엔카 가수 사오리 유키(Saori Yuki)와 연주했던 것이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Puff, the magic dragon이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일본 전통 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고토로 시작하는 이 연주를 들어보면, 트로트와 콜라보도 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https://youtu.be/FpACTIQL304

[Puff, the magic dragon, Saori Yuki]

   

https://www.youtube.com/watch?v=2LBqHkQgjrQ

Kikuchiyo to mohshimasu| Live from Portland - 2005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2016년에 나온 Je dis oui!이다. 다양한 보컬이 프랑스어, 페르시아어, 아르메니아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터키어, 코사어 및 영어 등의 8개 국어로 노래한 음반이다. 이 밴드의 정체성을 알려면 이 앨범을 정주행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두 매력적인 보컬이 함께 부르는 무대도 참 좋다. 아래 곡은 터키어인데, ‘내 사랑은 봄이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두 번째 곡은 멕시코 출신 싱어송라이터인 에드나 베스케스(Edna Vazquez)와의 연주이다. 매력적인 싱어인데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면 Sola Soy라는 곡도 들어보길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yR8omSULE

Aşkım bahardı | Live from Bend, Oregon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m0FyNXukqtg

Besamé Mucho - Edna Vazquez


스페인어 노래를 몇 곡 더 꼽자면, Donde Estás Yolanda(어딨니 욜란다)는 라틴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단언컨대 몸치라도 몸을 흔들 수밖에 없다. 또한 쿠바 리듬의 살아있는 전설인 콩가 연주자, 미겔 베르날(Miguel Bernal)이 부른 Yo Te Quiero Siempre(난 늘 너를 사랑해)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힐 수 없다. 아래 장면을 보면 누구라도 그 현장에 있고 싶어질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FNntd48II8

¿Donde estas, Yolanda?


https://www.youtube.com/watch?v=pguUI566-gU

Yo te quiero siempre, Miguel Bernal


아직 한국 가수와 콜라보 앨범은 듣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래서 기대가 된다. 과연 어떤 장르, 가수와 처음 무대를 하게 될지…. 찾아보니 내한 공연에서 한국 노래를 불렀던 영상이 있다. 가사가 부분적으로 뭉개져서 정확히 전달은 안 되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노래다. 밴드가 잘 아는 리듬이라 이 곡을 준비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보다가 꽂혀서 몇 번이나 들었던 곡이다. 까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 감독의 영화 까마귀 기르기(Cría Cuervos)에 실렸던 Porque te vas(네가 떠났기 때문에). 한국어 버전은 1979년에 지금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보연이 낸 앨범에 수록된 생각이다. 물론 가사는 원곡과 다르다. 이후 공연에서 한국어 노래를 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하는 것만 들어도 너무 반갑다.     


https://www.youtube.com/watch?v=KR5mKDnrtiA  

   



음악은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 순간은 옆에 있는 누구와도 손을 잡고 싶어진다. 핑크 마티니는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전세계를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이려는 행복한 꿈을 가진 밴드가 아닐까. 세 번이나 공연을 왔으니 우리나라 가수와의 콜라보도 머지않았을 터. 혹시 지금 한국어 곡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기분 좋은 상상에 입꼬리가 씰룩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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