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새
불가해한 돌
산 제물의 살갗
무한한 눈들
심연의 끝
침묵의 폭
오, 마추픽추
잊혀진 신
노스탤지어의 찬사(Elogio de la nostalgia) 中
어느 12월, 손님 없는 허름한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오래 기다렸다. 기차를 타고 졸다 깨기를 반복하며 한참을 올랐다. 그렇게 올라온 산마을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우비를 입고 산길을 올랐다. 비가 와서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오기 같은 희망으로 열심히 걸었다. 해발 2430m 정상, 안갯속에서 사라졌던 잉카의 흔적, 마추픽추가 조금씩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 느낌을 말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게 침묵이란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잉카 제국은 13세기부터 16세기 중엽까지 남미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오늘날 콜롬비아, 칠레,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석공이 발달한 문명이었다. 깊은 산속 그것도 꼭대기에 이런 도시를 지을 정도의 정교한 문화를 가졌던 그들은 1532년 스페인 정복자인 피사로에게 무너진다. 신무기와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에 수많은 잉카인들이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그들의 찬란했던 문화는 그들의 흔적과 음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역에서 안데스 음악을 하는 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묘한 피리와 찰랑이는 기타 소리에 발길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께나(Quena)라는 안데스 전통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물결을 쉬게 한다는 만파식적처럼 마음에 복잡한 모든 것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그 안에는 묘한 힘이 있다. 예전 인디오들은 사람이나 꼰도르 뼈로 이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악기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다면, 알렉산드로 케레발루(Alexandro Querevalú)의 음악을 들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늘 팬플루트가 보이는데 바로 시쿠(Siku, 아이마라어 명칭으로, 스페인어로는 삼뽀냐sampoña라고도 불림)라는 악기이다. 관의 숫자나 배열에 따라 그 종류는 다양하다. 그리고 매력적인 인디오 기타, 차랑고(Charango)가 있다. 차랑고 매장을 가보적이 있는데, 등 모양이 다양한 걸 보고 감탄했었다. 아마존 지역에 사는 포유류인 아마르딜로의 가죽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모양이 독특하다. 그 외 큰 북인 봄보(Bombo)나 하프 등의 악기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uQrRNWRfEE
잉카 시대, 타키(Taki)라는 단어가 노래와 춤을 동시에 뜻했던 만큼, 이 둘은 절대 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노래와 춤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페루의 아레키파와 안데스 남부에서 펼쳐졌던 야라비(Yaraví)는 멜랑콜리한 음률이 주를 이루며 오늘날 많이 퍼져있는 노래 형식이다. 이것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부터 발달한 스페인의 음유 시와 잉카 형식이 합쳐진 형식이다. 사이먼&가펑클이 불러서 유명해진 ‘철새는 날아가고(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또, 우아이노(Huayno)가 있는데, 안데스 중앙부에서 널리 퍼진 노래와 춤으로 이것도 마이너 감정이 가득하고 템포가 빠른 편이다. 그 외, 하라위(Harawi)는 잉카 시대 널리 퍼진 형식으로 주로 축제나 농사일을 할 때 불렀다고 한다.
콘도르(Condor)가 나타난다는 골짜기 위에서 한참 기다렸다. 큰 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눈앞으로 지나가는 거대한 몸짓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로스 키하르카스(Los Kjarkas)>는 1965년 에르모사(Hermosa) 형제들인 윌손, 카스텔, 곤살로가 의기투합해서 만든 볼리비아 국민 밴드이다. 밴드명은 <카르카kharka>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케추아어로 ‘불안, 두려움, 떨림’이라는 뜻이다. 그들 노래 중에 <울면서 떠났네(Llorando Se Fue)>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람바다 <Lambada: 포르투갈어로 ‘채찍’이란 뜻으로 브라질의 전통춤임>의 원곡이기도 하다. 그들의 음반 중에 명곡이 많은데 그중에서 애절한 발라드 느낌의 <유리 새(Ave de cristal)>를 소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rRFpdjZREo
개인적으로는 유리 오르뚜뇨(Yuri Ortuño)의 음악을 종종 듣는데, 그는 63년생 볼리비아 출신으로 유명한 작곡가이자 가수이다. 12살 때부터 남자 형제인 에르네스토 오르뚜뇨(Ernesto Ortuño)와 함께 <오르뚜뇨 형제 듀오(Dúo Los Hermanitos Ortuño)>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79년에는 젊은 음악가들과 <프로옉시온(Proyección)>이라는 그룹을 만들었고, 로스 키하르카스(Los Kjarkas)에서 활동한 적도 있다. 그 외 듀오 센티미엔토(Dúo Sentimiento)와 수카이(Sukay), 듀오 딸 빠라 꾸알(Dúo Tal para cual)의 일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그가 만든 밴드인 <프로옉시온(Proyección)>은 민속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남미 리듬을 알리며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그들의 곡 중 <사랑해줘(Amame)>는 인제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한 사람이 이미 멀어져 간 사람, 다른 사랑을 찾은 그 사람,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그 사람에게 사랑해달라고 외치는 노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BpdbH6iKI
세상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사라지면, 과연 남는 노래가 있을까. 대중가요의 주제 중에 사랑 그리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그리움과 이별 등의 내용이 거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 옛날, 깊은 산속에 살던 그들도 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케츄아어(남미 인디오 언어로 잉카제국의 공용어)로 ‘사랑’을 ‘쿠야이(khuyay)’라고 한다. 그들도 분명 ‘쿠야이’를 외치며, 울고 웃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낯선 언어의 노래를 듣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그 '쿠야이' 때문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