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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Oct 09. 2024

수면의 과학

[영화롭게 8] 모든 질서에 죽음을!

꿈에 집착했던 프로이트는 그것을 억압된 욕망과 충동의 상징으로 보았고,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꿈을 쉼과 종교적 의미로 보았으며, 장자는 호접지몽에서 꿈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꺼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눈을 잘 조절하면 꿈의 노예에서 벗어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꿈은 안구 운동이 빠르게 일어나는 렘수면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낮의 경험이 재생되면서 정보가 저장되거나 삭제된다. 그런데 눈을 떠서도 꿈을 꾸고 있다면 어떨까? 현실보다 꿈이 익숙하고, 꿈에서만 용감한 어른 아이가 사랑에 빠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영화는 불안한 청년 스테판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앞뒤 시간의 흐름이 아닌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휘어지고 양옆으로 마구 움직인다. 사랑은 기억과 환상, 투영, 오해와 얽혀 있어 전통적인 선형적인 구조에 맞출 수 없기에 그럴 수 있으리라.

예술적 기질이 다분한 스테판은 어머니가 있는 파리에서 지루한 일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제 삶을 움직이는 요소들은 무시한다. 현실에서 그의 창의력은 구겨진 종이 같지만, 다행히도 꿈속에서 그의 재능을 빛을 발한다. 꿈속에서는 진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종이 세트장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며 삶과 친구들, 연애에 관해 능숙하게 이야기하는 어른이다.      


얘는 6살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 못 하며 살고 있어요.    


하지만 일상은 너무 평범해서 꿈이 현실을 지배할 위기에 처한다. 옆집에 사는 스테파니와의 관계는 발전 전부터 의심과 질투, 혼란이 가득하다. 그의 유치한 행동, 특히 그녀에게 보이는 행동은 절제는 고사하고 오히려 퇴행적인데, 합리적인 어른 세계로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둘은 불가능해 보이는 방식으로 만나 유통 기한이 있는 관계를 시작한다. 현실 속 어른인 스테파니는 그런 그를 참다 지치고, 이 영화는 결국 몽환적인 이야기에서 집착적이고 어두운 악몽으로 변해간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랑의 갈망이나 환상에 관한 이야기일까?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안에 따뜻함과 진실, 특히 두려움 없는 사랑의 어려움, 경계 없는 우정, 유치한 질투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건 확실하다. 감독은 꿈속 상상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그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데 독특하다 못해 기묘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건과 장소는 반복적이고 소박하지만, 괴짜 같고 꿈과 현실이 뒤섞인 ‘어른 아이’의 내면을 아주 진지하게 그린다. 이 순진하고 불안한 인물은 끊임없이 일상적인 현실과 충돌한다. 하지만 현실 왜곡과 방어기제로 점철된 영화가 이렇게 자유롭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감독은 패배자나 미성숙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 보인다. 전작 <이터널선샤인>에서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그랬듯, 스테판과 스테파니도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미셸 공드리는 이 영화에서 상상 초월, 혁신, 매력적인 시각적 스타일을 선보인다. 특히 컴퓨터 특수효과가 아닌 저렴한 정지 모션 애니메이션과 파피에마셰 효과를 사용해서 주인공의 꿈속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 영화는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왜곡된 논리가 지배하는 무의식 세계를 그리지만, 그 꿈의 세계는 다행히도 원초적인 성적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루이스 부뉴엘 영화처럼 사회 비판 목적도 아니다. 또, 살바도르 달리, 팀버튼의 초현실주의 미학과도 다르다. 오히려 따뜻하고 재밌고 감동적인 사랑, 삶, 우정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자주 등장하는 기이한 장면은 꿈이 우리 일상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이한 그의 영화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꿈도 그의 꿈만큼 엉뚱하고 자유롭고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살짝 엉성한 서사조차 전체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     


결국 이 영화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스토리 전개에서 벗어나 놀이와 창작 과정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가 아닐까. 종종 비관적 분위기가 흐르긴 하지만, 분명 그 안에서 창조적 자유가 있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랑도 초현실도 아닌 창조적 자유를 보여주는 영화, 그러니까 모든 질서에 죽음을 달라고 소리치는 영화라고!      


PS, 멕시코의 명배우 가엘 가르시아가 아니면 누가 이 역을 했을까. 혹시 그와 초면이라면, 체 게바라 역을 훌륭히 소화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Zoom in]     


성별이 다른데 어떻게 동성 커플이에요?/ 정신적으로 같은 성이잖아.

쓸데없는 그림에 형편없는 이름을 더하는 일 말이야.

파멸학

장조음 소리가 안 나는 피아노

잠시 한눈팔면 질서가 끼어들지. 모든 질서에 죽음을!

값진 삶에 1초를 더하는 타임머신

채워지지 않는 갈망에 탄식하는 마음, 이건 사랑이야.

너 말곤 다 따분해.

내게 바라는 게 뭐야?/ 모르겠어     


[음악]     


시각 정보에 눌려서 소리가 잘 안 들어오는 영화. 하지만 전반적인 음악은 사랑스럽고 귀엽다.      


https://www.youtube.com/watch?v=Qtcr1PExR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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