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실로 좋은 세상
쿠바에서 신곡 알람을 받다니!
나만 받은 것도 아닌데....
그는 내게 따끈한 신곡을 전하기 위해
그렇게 유튜브를 했었나 보다
착각은 행복
오래전 쿠바 땅을 밟았다. 말레콘을 지나며, 아바나 거리를 밟으며, 길게 늘어진 담배 농장을 바라보며, 하늘과 땅이 붙어버릴 듯한 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며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아바나 대학교 학생에게 가이드를 부탁했는데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다. 분명 어딘가에 그 이름을 적어뒀을 텐데 오래전 노트는 집 어디선가 조용히 혼자 나이를 먹고 싶은지 나타나질 않는다. 지금은 이름도 잊은 그는 내가 쏟아내는 질문의 폭포 아래서 흠뻑 젖은 채 늘 웃었다. 그랬던 그가 매우 곤란해 했던 질문 하나,
“실비오 로드리게스 어디에 사는지 알아? 집 앞이라고 가보고 싶은데….”
내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건지 그는 한참을 주저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동양인이 찾아가면 신기해서라도?! 잠깐 만나주지 않을까 하는 엄청난 착각을 했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실비오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던 건지, 알 수 없는 정보였는지 결국 나는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 착한 소년은 질문의 대답으로 멋진 공연을 하는 카페로 안내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봤으면 어땠을까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소위 찐팬 인증은 이 정도면?
화가, 문맹 퇴치 교사, 음식점 직원, 군인, 가수, 아버지... 1946년생 우리 나이로 74세인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íguez)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담배 농사를 주로 짓는 비옥한 계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부인 아버지와 미용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늘 볼레로와 쿠바 노래를 부르던 어머니에게서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물론 삼촌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지만, 잠들 때 트로바 노래를 해주고, 늘 노래를 불러주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는 열여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중단하고 군대에 갔다가 그곳 동료에게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면서 많은 시를 쓰고 곡을 만들었다. 1967년 <음악과 별들>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데뷔하는데, 당시 가졌던 유일한 신발인 군화를 신고 출현했다. 이 시기에 그는 루이스 로페스(Luis Lopez)와 듀엣으로 활동했고, 1969년 처음으로 엘피판으로 <Pluma en ristre(손에 쥔 펜)>이라는 앨범을 냈다. 여기엔 첫사랑을 그리며 쓴 곡을 비롯해 총 4곡이 들어있는데, 그때만 해도 실험적으로 출판사에서 책과 함께 나온 앨범이었다. 이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순수함 그 자체로 지글거리는 소리가 그때의 아련함을 더해준다. 물론 지금도 기교 없는 미성이 매력적이지만.
그리고 1975년 첫 번째 솔로 앨범인 <나날과 꽃들 Dias y Flores>을 낸다. 이후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로 음악이 퍼지면서 그는 누에바 트로바 운동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그는 40년 이상 음악을 하면서 570여 곡 이상을 발표했고, 20세기 말 쿠바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에르네스토 레쿠오나(Ernesto Lecuona)와 함께 쿠바 최고의 작곡가로 선정되었다. 자타공인 특히 그는 스페인어를 사용 국가들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이다. (갑자기, 에르네스토 레쿠오나네 샛길로 들어서고 싶은 유혹을 주머니 속에 구겨 넣으며….)
나는 그의 음반을 습관처럼 듣는다. 앨범들을 쭉 살펴보고 기분에 따라 선택해서 듣는데 최근까지는 1993년에 발표된 라이브 앨범 <Mano a mano>를 많이 들었다. 음악적 동료인 루이스 에두아르도 아우테(Luis Eduardo Aute)와 공연한 앨범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De alguna manera>에 꽂혀있었다. 여러 버전을 다 모아서 들었지만, 역시 결론은 오리지널을 넘지 못한다는... 이렇게 그와 함께 노래하던 동지는 올해 4월 세상을 떠났다. 이번 신보 <기다림을 위해(Para la espera)> 중에는 그에게 헌정하는 노래인 <끝없는 밤 그리고 바다(Noche sin fin y mar)>가 실려있다. 여담이지만 원래 2017년에 이 곡을 썼고, 실비오의 아들이 혼수상태로 병원에 있었는데 이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깨어났다는 어마한 곡이다. 그런 바람이 담긴 게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이번 신보인 <기다림을 위해서(Para la espera)>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그의 첫 디지털 음원인 이 음반은 쿠바인들을 위한 선물이다. 또한, 올해 3월에서 4월 사이에 세상을 떠난 일곱 친구에게 헌정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물론 그중 내가 아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왕관 모양의 바이러스 공격을 함께 받은 인생 동지로 추모하고 싶은 마음에 이름이라도 불러본다. 그가 말한 위대한 창조자들은 쿠바 감독이자 작가인 투팍 피니야(Tupac Pinilla), 쿠바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만화가인 후안 파드론(Juan Padrón), 스페인 가수이자 감독인 루이스 에두아르도 아우테(Luis Eduardo Aute), 쿠바 작가인 세사르 로페스(César López),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úlveda), 아르헨티나 음악가이자 작가인 마르코스 문드스탁(Marcos Mundstock), 멕시코 가수이자 배우인 오스카르 차베스(Óscar Chávez)이다. 끝으로 실린 모든 곡이 다 맘에 들지만, 그중에서도 코드 진행도 뮤직비디오도 수수께끼 같은 한 곡을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