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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ndo Sep 03. 2020

[송포어스. 3]
세자리아 에보라

약속의 정원

카보 베르데
모르나의 여왕
원조 맨발의 디바
짙은 보라색

 

세자리아 에보라(Cesária Évora), 스무고개 없이 바로 이름을 말해도 갸우뚱할 수 있다. 처음 음반을 살 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포르투갈 가수인 줄 알았다. 당시 파두(Fado)에 완전히 빠져있었는데, 포어도 하고 비슷한 분위기가 나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카보 베르데의 가수이고, 그 나라의 전통 음악 장르가 모르나(Morna)라는 걸. 그녀의 목소리는 한 마디로 보라색이다. 들을 때마다 김경주 시인의 말처럼 뼈에 연보라색 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 물론 그 보다는 훨씬 짙은 보라색.


카보 베르데(Cabo verde)에서 카보(cabo)는 ‘곶’이고, 베르데(verde)는 ‘녹색’이라는 뜻이다. 생소한 이 나라는 과연 어디 있을까? 먼저 아프리카에서 세네갈을 찾아보고 왼쪽으로 쭉 따라가다 보면 15개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가 보인다. 그리고 거기에서 위쪽을 쭉 따라가다 보면, 이 나라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바로 짐작할 수 있다. 오랫동안 포르투갈 식민지로 있다가 1975년에 독립한 이 나라 출신인 그녀는...

    

너무 가난해서 열여섯 살부터 술집과 호텔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맨발로 노래한 이유는 멋이 아니었고, 제대로 된 신발을 신을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실력과 지역 음악가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모르나의 여왕’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나라가 독립한 해에 30대 중반이었던 그녀는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으로 노래를 멈추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여러 어려움으로 10년 동안 알코올 중독과 싸웠다. 이렇게 그녀의 삶을 몇 줄만 들어도 그녀의 목소리에 배어있는 슬픔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다.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노래는 <소다드 Sodade(그리움)>였는데, 그녀만큼 그립고 보고픈 마음을 절절하게 전할 수 있는 있는 가수가 또 있을까 싶다.


이 나라의 전통 음악인 ‘모르나(Morna)’는 곧 그녀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이것은 이 나라의 보아 비스타(Boa Vista) 섬에서 시작해서 그 외 섬들로 퍼져 나갔다. 브라바 섬에 있던 시인이자 작가인 에우헤니오 타바레스(Eugénio Tavares)는 여기에서 카보 베르데의 현대 음악 유산의 일부가 된 작품들을 만드는 영감을 얻었는데, 그 곡 중 하나가 바로 <Hora di Bai(떠날 시간)>이다. 이 장르는 포르투갈의 파두와 브라질의 모디냐, 라플라타강 유역의 땅고, 앙골라의 애도, 한탄이 뒤섞여 있다. 사랑에 대한 호소가 주를 이루고 향수, 고통, 경멸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며 목소리와 음악, 시, 춤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주로 토착 언어로 부르고, 악기는 보통 우쿨렐레 시초인 카바키뇨와 클라리넷, 아코디언,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가 사용된다.  종종 블루스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미국의 흑인 음악과 아주 흥미로운 문화적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유럽의 멜로디와 강한 아프리카 뿌리, 땅과 음악 스타일이 섞이면서 발전해 나갔다.



내가 처음 샀던 그녀의 음반은 <사랑의 목소리 Voz D'amor>다. 음반 가게를 정리한다고 할인이 붙여서 들어갔는데, 이 음반만 할인 딱지가 없어서 못 살 뻔했던...그런 소중한? 앨범이다. 좀 예민해 보이던 아저씨는 이 가수를 좋아하냐고 묻더니 가격보다 조금 더 싸게 줬다. 외국인 할인 찬스를 알뜰히 사용한 나는 그날 할인에 눈이 멀어 계획에 없던 음반들까지 샀다. 아저씨가 이미 예상한 게 아닐지.. 암튼 주머니는 텅 비었지만, 흰 봉지 안에는 보물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이 음반에 들어있는 곡을 한 곡 소개할 텐데,  듣는 순간 반가움과 놀라움이 밀려올 것이다.  무엇보다 전주부터 시작하는 오묘한 분위기에 반하게 될 것이다. 유명한 올드팝 <푸른 들판 (Green Fileds)>이 그녀만의 버전인 <약속의 정원 (Jardim Prometido)>으로 변신했다. 단, 언어의 한계로 그녀의 목소리만 소개한다.


아프리카, 

딱 한 곳에 갈 수 있다면 카보 베르데에 가보고 싶다. 

벽화며 무덤이며 기념물이며...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며 음악을 듣고 싶다. 

뼈에 짙은 보랏빛 불이 가득 들어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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